[집코노미] 세입자의 반격…동탄·천안 300채 갭투자자 고소

입력 2019-04-09 08:38   수정 2019-04-09 08:40

집값 떨어지자 가족과 채무…고의 경매로 떠넘기기
뿔난 세입자들 소송…"임차인 보호 제도 정비해야"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와 충남 천안 등지에서 일어난 고의경매 사건의 피해자들이 주택 보유수를 최고 300채까지 불렸던 집주인을 형사고소했다. ‘갭투자’를 했다가 역전세난을 맞은 집주인이 가족을 가짜 채권자로 내세워 집을 경매로 내놓자 집을 떠안은 세입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이 집주인은 자신과 아내 명의 부동산을 경매 등의 수법으로 세입자에게 넘겨 90여 채까지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매로 집 떠넘긴 임대인 고소

9일 수원지방검찰청에 따르면 화성 동탄과 천안의 아파트·빌라 등 소유주 12명이 전 집주인 임모 씨를 사기죄와 강제집행면탈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임 씨가 세입자들의 임대차보증금 돌려주지 않기 위해 가족들과 허위 채무를 만들고 집을 고의로 경매에 부쳤다”고 주장했다. 임 씨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세입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임 씨가 수백 채의 부동산을 운용하면서도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가 전혀 없고 오히려 경매를 악용하고 있어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강제집행면탈죄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입자들이 가압류나 지급명령 등 보증금 보호 조치를 취하기 전에 임 씨가 자신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없던 가짜 채무를 만든 까닭이다.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인 김학무 법무법인 부원 대표변호사는 “피고인 소유 부동산에서 동일한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화성과 천안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임 씨는 2008년께부터 갭투자에 나섰다. 세를 안고 불과 2000만~3000만원의 소액으로 아파트와 빌라를 대거 사들였다. 자신과 아내 등의 명의로 이렇게 사들인 부동산만 2015년을 전후해 270여 채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임 씨는 이달 기준 자신 소유 부동산을 94채까지 줄였다. 주변 새 아파트 입주로 집값이 떨어지자 일괄 경매 처분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처형 등 친인척 이름으로 후순위 근저당을 설정한 뒤 경매에 부쳤다. 전형적인 ‘고의 경매’ 수법이다. 이를 통해 임 씨는 대부분의 부동산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겼다.


◆사건의 재구성

임 씨가 부모에게 돈을 빌린 차용증에서부터 고의경매가 고도로 설계돼 있었다는 게 경매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는 어머니 차모 씨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3억3400여 만원을 빌렸다. 이때 이자를 연 8%로 설정하면서 상환 방법을 계좌이체가 아닌 채권자(어머니)의 주소지에 지참변제하기로 증서에 기록했다. 실제 상환이 이뤄졌는지는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이자 지급을 한 번만 연체하더라도 임 씨의 기한이익이 상실되도록 단서를 뒀다. 경매 전문가들은 그의 어머니가 언제든 곧바로 경매를 신청할 수 있었던 게 이 조항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씨 소유 동탄 아파트들의 경우 대부분 근저당 설정 한두 달 만에 경매에 부쳐졌다.


이처럼 경매로 넘어간 집에 세입자들이 대항력을 갖춘 등기부상 최우선순위일 때 응찰할 경매 투자자는 거의 없다. 감정가보다 싸게 낙찰받더라도 임차인의 보증금만큼의 차액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임차인들은 스스로 경매에 참여해 집을 떠안는 게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다. 임 씨의 아파트에 세들어 살다 집을 떠안게 된 이모 씨는 “분양받았던 아파트에 최근 입주했는데 전세로 살던 집마저 떠안게 돼 졸지에 2주택자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임 씨와 그의 아내 소유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그가 이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세입자들에게 떠넘긴 아파트는 확인된 것만 20채다. 경매가 기각 또는 취하됐다가 세입자들이 지급명령을 통해 다시 강제경매를 진행하면서 기일을 앞두고 있는 것도 29건이다. 이들 또한 대부분 세입자가 낙찰을 받게 될 것으로 경매 업계는 보고 있다. 임 씨와 그의 아내 소유 부동산은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126건(2016~2019년·재경매 포함)의 경매가 진행됐다. 이 가운데 제3자가 낙찰받은 건 19건에 불과하다. 경매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보증기관 등에서 가압류를 설정한 부동산도 모두 30가구다.

이 과정에서 임 씨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 전세보증금을 날릴 수 있으니 차라리 내게 매수하라”며 세입자들을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마저도 자신이 매수했던 가격에 1000만~2000만원 안팎의 웃돈을 붙였다. 황모 씨는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말에 흔들려 임 씨에게 1500만원의 웃돈을 주고 아예 매수했다. 임 씨가 이렇게 임차인에게 직접 매도한 아파트와 빌라도 7채다.

◆“세입자 피해 막을 제도 만들어야”

임 씨가 이 같은 전략을 펴는 건 자신의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아파트가격이 떨어지더라도 경매 등으로 위협해 세입자에게 집을 떠넘기면 자신은 보증금을 제외한 1000만~2000만원의 투자원금만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경매의 허점을 출구전략으로 악용한 최악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세입자들이 자신의 보증금 아래로 직접 낙찰받은 경우 보증금반환소송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보증금반환소송을 진행하면 집주인의 재산관계명시명령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버티더라도 예금과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을 파악할 수 있다”며 “만약 불응하거나 허위로 응하면서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그 자체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갭투자로 인한 세입자 피해를 막기 위해선 근본적인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주인들이 역전세나 깡통전세 등으로 몰린 상황에 한해서라도 대출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며 “경매나 일반 매매시장에만 맡긴다면 오도가도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출신인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는 임의규정인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조속히 의무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며 “보험 심사를 통해 무리한 갭투자를 한 집주인을 거를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는 전세 건전성을 사전에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2016년 9월 발의했지만 3년 가까이 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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