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내 20개 국가 5G 도입 예정…치열한 승부 펼칠 듯
지난해 5G 기기 시장 에릭슨·삼성전자順, 화웨이 4위
통신·제조업 협업 이어져…IoT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5G는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핵심 인프라다.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가치를 측정하기조차 쉽지 않다. 한국이 인프라 구축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한 데 세계가 놀라고 있다. 그만큼 국내 통신과 IT업계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미 전 세계 기업이 관련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승부는 어느 한 곳만 잘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한발 앞선 플랫폼 구축과 생태계 조성이 절실하다.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혁신하고 또 혁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선 5G 전략을 논의하는 아세안 국가들의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구엔만홍 베트남 통신부 장관은 베트남 독자기술로 내년 5G를 상용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아세안 회원국 관계자들이 깜짝 놀란 건 물론이다.
베트남 정부는 4G까지 중국 화웨이 기술을 토대로 통신망을 구축했다. 휴대폰 제조업체인 빈스마트를 갖고 있다. 베트남 군부가 운영하는 통신사인 비엣텔의 저력도 있다. 베트남의 5G 자신감이 회의에서 묻어났다.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다른 아세안 국가의 위기의식은 커졌다. 역설적으로 이 행사가 아세안에 5G 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도 5G 참여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이미 내년에 5G를 선보이려는 국가가 20개에 가깝다. 멕시코 러시아 터키 등 많은 신흥국도 5G에 참여하려 준비하고 있다. 2~3년 뒤면 세계 50개국 이상이 5G망 구축에 도전할 것이 분명하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런 바람이 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아프리카 각국에 5G로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을 주문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이른바 유무선 인프라의 단계적 접근방식이 아니라 바로 5G 모바일로 직행하는 ‘개구리식 도약(leap-frogging)’ 전략이다. 중국이 4G에서 직접 경험한 혁신 방식이다. 중국은 이들 국가에 기존 기술과 산업이 빈약하더라도 5G를 통해 곧바로 세계시장에 뛰어들 수 있으며 선진국 도약의 계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9년 전인 2010년 4G 이동통신이 시작됐을 때 1년 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은 세계를 통틀어 4개밖에 되지 않았다. 4G에 대응하는 단말기도 3개 기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글로벌 5G 경주에선 모든 국가와 기업이 달려들고 있다. 5G에서 뒤처지면 미래 산업 경쟁에서 밀려 국가의 명운이 위급한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화웨이 효과’도 한몫했다. 영국 조사회사 IHS마킷은 5G 경제효과가 2020~2035년 3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에릭슨은 1300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5G 상용화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는 소식은 다른 국가로선 충격이다. 선진국은 폄하하기에 바쁘고 후발국은 따라 할 방법을 찾느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모바일시장 판도 달라져
5G를 둘러싼 통신 관련 기기와 장비시장에선 지난해부터 큰 변화가 일었다. 지난해 5G 관련 통신기기 통계(IHS마킷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에릭슨(24%)이 수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21%)가 2위에 올랐다. 중국 화웨이는 노키아(20%)에 이어 4위로 떨어졌다. 그동안 세계 통신시장을 장악해온 화웨이가 5G에선 빛이 바랬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화웨이가 제조한 5G 장비 및 단말기 사용을 차단해왔다. 세계 각국이 본격적으로 5G에 설비투자를 시작할 때 화웨이 장비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결산에서 매출이 올랐다고 했지만 통신기업용 사업매출은 오히려 1.3% 떨어졌다.
단말기시장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감지된다. 구글과 퀄컴이 연합하면서 애플 스마트폰과 대항하는 모양새다. 퀄컴의 5G용 반도체와 구글의 기본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단말기 개발이 진행 중이다. 5월에 구글폰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애플을 공통의 적으로 두고 있는 양사의 연합 체제가 경쟁 환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애플은 퀄컴 대신 채택할 수 있는 반도체기업 인텔에서 반도체 생산 전망이 불확실해지면서 앞길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통신 기업과 제조업체 간 협업도 관전 포인트다. KT는 이미 현대중공업 선박 제조 과정에 5G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인력 투입을 줄이고 제조 공정의 효율화를 꾀하는 스마트공장 실현의 첫걸음이다. 독일의 도이체텔레콤도 조명업체 오스람에 무인로봇 시스템을 제공했다. 미국 AT&T와 영국의 보다폰 역시 자동차 기업에 5G 기술을 제공한다.
IoT, 5G의 큰 시장 부상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일 일본 파나소닉과 NEC가 공장 생산라인을 5G 기술로 자동 제어하는 스마트공장 구축을 추진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로봇과 로봇의 커넥션이고 기계끼리의 연결이다. 5G의 핵심 기술은 M2M(machine to machine·사물통신)이라는 지적도 있다. 5G가 갖는 다중 동시 접속의 장점이 사물인터넷(IoT) 혁명을 이끌고 있다.
지금은 1㎢에서 통신 가능한 기기가 약 10만 대지만 5G 세상에서는 100만 대나 된다. 자동차와 가전, 로봇, 감시 카메라 등 방대한 사물의 통신을 지원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에서도 5G는 필수적이다. 결국 시장과 수요를 찾는 노력이 5G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정부 규제가 선점효과 없앨 수도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는 원래 비디오 대여 기업이었다. 하지만 4G 이동통신이 나오면서 동영상 다운로드 속도가 빨라지자 동영상 서비스로 사업을 바꿨다. 넷플릭스는 그 후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시가총액 2000억달러의 기업이 됐다. 순전히 4G 덕분이었다. 유튜브 또한 4G가 낳은 거대 미디어 기업이다. 누구도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이처럼 이른 시일 내 성장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존도 4G가 낳은 모바일 쇼핑 환경에서 고속 성장했다.
5G도 마찬가지다. 통신 속도가 더 빨라지고 데이터 지연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일어날 환경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어떤 환경이 나타나고 어떤 블록버스터가 갑자기 출현할지 모른다. 아프리카에서 오히려 세계 최고의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생태계다. 전인미답의 환경이다. 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이 속에서 정부가 규제 등으로 기업을 방해하면 기업도 죽고 생태계도 죽는다. 그동안 그런 기업과 시장을 수없이 지켜봐왔다. 모든 기업이 경쟁하는 대전환의 환경에서 제도로 발목을 잡으면 5G 선점 효과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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