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끝나면 평화로워질 줄 알았습니다. 시장이 이제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같습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자산을 운용하는 사람의 말입니다.
9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의 분위기는 차가웠습니다. 아침부터 급락세로 출발해 결국 다우지수가 0.72% 떨어졌고 S&P 500 지수는 0.61%, 나스닥 지수는 0.56% 하락한 채 마감됐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성장률 하향, 미국 채용공고 53만개 감소 등 여러 나쁜 소식이 있었지만, 투자자들을 괴롭힌 건 “무역전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전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항공기 보조금을 높고 서로 관세를 때리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트위터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는 EU의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이 미국에 해를 끼쳤다는 점을 밝혀냈다. 110억 달러의 EU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유럽은 몇 년 간 무역에서 미국을 이용했다. 이는 곧 끝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전날 "EU가 에어버스에 보조금을 준 게 미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이미 WTO가 여러 번 확인했다. 무역법 301조에 의거해 EU가 보조금을 없앨 때까지 추가 관세를 부과할 EU 제품을 찾는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반발해 EU도 “미국 정부가 보잉에 지급하는 보조금에 보복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장이 우려하는 건 미국과 유럽 관계뿐만이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일 미중 무역협상에 대해 "예단하지 않겠다"고 갑가지 톤을 낮추면서 미중 협상도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과는 오는 15~16일 각료급 무역협상을 처음 개최합니다.
미국에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일본에선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상이 협상에 나섭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앞두고 9일 아베 총리 관저에서 경제 관련 각료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가졌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이날 미국이 작년부터 부과중인 철강 알루미늄 관세에 맞서 보복관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품목들을 관세 대상으로 고르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오렌지주스, 메이플시럽, 위스키 등에 부과했는데 이번에 사과와 돼지고기, 에탄올, 와인 등을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외무장관은 "우리는 보복 목록을 바꿔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과의 관세 분쟁은 다시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멕시코와의 관계도 위태롭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멕시코가 향후 1년간 불법 이민과 마약 밀반입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면 멕시코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멕시코도 이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죠.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해서 맺은 USMCA는 세 나라 모두에서 비준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는 5월17일이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수입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결론이 납니다.
독일과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걸려있습니다. 무디스는 관세 25%가 매겨지면 독일, 한국, 일본 경제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GDP 0.2%포인트, 한국과 일본은 0.3%포인트의 GDP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수입차에 관세를 매길 경우 이들 세 나라가 가만히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월스트리트 일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 중앙은행(Fed)에 금리 인하와 새로운 양적완화(QE)를 요구한 게 ‘미중이 무역협상에 합의하더라도 계속해서 다른 나라들과 무역전쟁을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려는 것’이란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트위터를 통해 “Tariffs are the greatest!”(관세는 위대하다), "I am a Tariff Man"(나는 관세맨)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발 무역전쟁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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