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의 본질인 '싼 가격'으로
매출 감소 돌파구 찾기 나서
[ 안재광 기자 ] 이마트는 2016년 쿠팡과 초특가 전쟁을 벌였다. 생수 기저귀 라면 등을 누가 더 싸게 파느냐 하는 가격전쟁이었다. 올 들어서는 ‘국민가격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농수산물을 절반값에 팔고 있다.
그동안 이런 저가정책은 미끼에 가까웠다. 일회성에 그쳤고, 품목도 한정적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사진)은 이를 뒤집기로 했다. 초저가의 일상화, 전면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10일 신세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모든 제품을 상식 이하 가격에 팔 수 있도록 이마트만의 초저가 구조를 확립하라”고 이마트 임원들에게 지시했다. 설립 후 처음 매출 감소란 위기를 맞은 정 부회장이 내린 특명이자 승부수다.
쿠팡 등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공세, 매장 방문객 감소, 편의점 확산 등 ‘3대 악재’로 이마트 오프라인 점포의 매출은 지난해 처음 감소했다. 대형마트의 본질인 ‘싼 가격’으로 돌아가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정 부회장은 판단했다.
그는 “초저가 시장은 국내에서 아무도 개척하지 못한 미지의 시장”이라며 성장성도 강조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39만원짜리 50인치 TV, 반값 라면과 소고기 등과 같은 가격 파괴를 모든 품목에서 매일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이와 함께 초저가 전략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는 노브랜드 전문점을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전환해 운영하기로 했다. 첫 가맹점 매장은 이달 말 연다. 초특가 전략을 실현하려면 구매 파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노브랜드를 통해 수요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형마트 3대 악재 넘어라"…이마트 '연중 초저가' 파격선언
“소비자가 저렴하다고 확 느낄 수 있도록 목표가격부터 설정하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최근 경영전략회에서 임원들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마트는 나름대로 싸게 판다고 팔았는데 소비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성이었다. 정 부회장은 “목표가격을 정했으면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구조를 구축하고, 같은 가격이라도 다르게 보는 창의적인 생각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어려움에 처한 대형마트의 출구가 아니다. 그는 ‘초저가’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이마트가 가장 앞서 시장을 장악하라고 주문한 셈이다. 이 지시를 받은 임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상식을 벗어나는 가격 파괴’란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올 하반기부터 이 같은 초저가 시장 프로젝트는 가시화될 예정이다.
‘가격에서 뒤처지면 잊힌다’ 위기감
가격 주도권 싸움은 과거에도 늘 있었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경쟁사에 비해 단 1원이라도 낮게 판매하려는 최저가 경쟁, 쿠팡 등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등에 맞서는 대대적인 할인행사 등을 했다. 이때는 경쟁의 구도가 ‘누가 가격 우위에 서느냐’ 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싸움은 우위가 아닌, 생존과 맞물려 있다. ‘뒤처지면 이마트가 통째로 잊힌다’는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목표가격이란 개념이 그래서 나왔다. 목표가격이란 가격을 먼저 정해 놓고 팔자는 것이다. 과거엔 판매할 상품을 가져온 뒤 ‘적정 마진’을 붙이고, 마지막에 가격을 정했다. 앞으론 이렇게 하지 않을 예정이다. 상품 판매에 앞서 가격을 먼저 정한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낮은 가격이다. 예컨대 오징어 판매에 나선다면 목표가격부터 정한다. 그 가격이 1000원이라면 상품 조달은 이 가격에 맞춰 하겠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상시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선 기존의 상품조달 방식을 통째로 뜯어고쳐야 한다. 오징어 도매상으로부터 2000원에 물건을 떼온다면 1000원에 판매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 경우 이마트는 오징어 도매상을 건너뛰고 직접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도 목표가격 달성이 불가능하면 오징어배를 사 직접 잡는 것까지 고려하는 식이다. 이마트는 실제 축산품을 가공하는 미트센터를 최근 여는 등 기존에는 없던 설비와 인력을 충원 중이다. 근본적으로 가격을 다시 정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에어프라이어, TV 등 가전제품을 이마트가 기획하고 중국 등 해외 공장에서 제조해온 뒤 판매하는 것도 초저가 시장으로 뛰어들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노브랜드 전문점, 가맹으로 전환
이마트의 또 다른 복안은 대형마트를 넘어서는 다양한 업태를 구축하는 것이다.
노브랜드 전문점 확장이 대표적이다. 노브랜드는 이마트가 상품 브랜드를 떼고 오로지 가격과 성능에만 집중하겠다는 콘셉트로 내놓은 자체상표(PB)다. 이런 초저가 PB 상품만 모아 놓은 곳이 노브랜드 전문점이다.
노브랜드 전문점이 처음은 아니다. 유럽과 북미에선 노브랜드 전문점처럼 일찍부터 저렴한 PB 상품으로 매대를 가득 채운 ‘하드 디스카운트 스토어’(초저가 슈퍼)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에선 초저가 슈퍼인 독일계 알디와 리들이 오프라인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서유럽 내 초저가 슈퍼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처음 20%를 넘어섰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슈퍼마켓 등이 정체한 가운데 유일하게 비중이 높아졌다. 정 부회장은 이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마트도 이런 흐름에 맞춰 2016년 처음 노브랜드 전문점을 내놨다. 작년 말 200개까지 매장 수를 확대했다. 올해부터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전환해 점주들도 모집 중이다. 이달 안에 경기 군포 산본역점 등 세 곳의 가맹 매장을 연다. 가맹점 모집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단기간 노브랜드 전문점이 확 늘어날 것으로 이마트 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이마트와 노브랜드 전문점을 통해 상품 판매량이 늘수록 바잉 파워(구매력)가 높아져 상품 가격을 더 낮추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노브랜드 전문점과 함께 초저가를 이끄는 또 다른 ‘무기’다. 트레이더스는 코스트코처럼 대용량 상품을 초저가에 판매한다. 이마트는 부실 점포 매장을 꾸준히 정리하고 있다. 2016년 147개를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해 작년 말 143개가 됐다. 같은 기간 트레이더스 매장 수는 11개에서 15개가 됐다. 연내 18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노브랜드 전문점과 트레이더스, 여기에 상시적인 초저가를 앞세운 이마트까지 더해 초저가 시장을 선점하는 게 정 부회장의 복안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