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원순 기자 ] ‘하늘은 검고 대지는 누르나니, 우주는 얼마나 넓고 거친가. 해와 달은 가득 차면 기울고, 별자리는 (태곳적부터) 저렇게 넓게 펼쳐져 있도다. 찬 계절이 오면 더위는 물러나고(天地玄黃 宇宙洪荒 日月盈 辰宿列張 寒來暑往)….’ 약간의 영탄조를 보태 풀어본 천자문의 도입부는 언제 읊어도 웅대하다. 한자 입문의 초급 교과서처럼 여겨지지만 고대 동양의 대(大)서사시라 할 만하다.
하늘 땅과 함께 우주로 이 서사문은 시작한다. 천지인(天地人)을, 때로는 시공(時空)과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 우주지만, 좁게는 지구 바깥이다. 천자문으로 보면 문자와 학문 세계의 처음도 우주다. 우주에 대한 경이, 탐구와 관찰이 과학과 철학이 되고 예술과 종교가 됐을 것이다.
영어에서도 ‘universe’ ‘cosmos’는 흔한 말이다. 서양세계에서도 우주는 미지와 불가사의의 영역이면서 무한과 신성, 그 자체일 때가 많았다. 우주의 신비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그대로 과학이 됐다. 그렇게 물리학 등으로 세분화된 과학 이론은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전기와 통신, 컴퓨터와 AI로 진화해온 과학 기술은 미증유의 문명사회를 가능케 했고, 더한 풍요를 꿈꾸게 했다.
그제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레터스’를 통해 이론으로 존재하던 블랙홀의 모습이 공개됐다. 우주를 탐구해온 인류가 또 하나의 신기원을 연 것이다. 한국 과학자도 포함된 13개국 연합의 블랙홀 탐사 프로젝트팀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소개한 블랙홀은 개요만으로도 아스라하다.
5500만 광년 거리에 있고,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라고 한다. 1977년 발사된 무인우주탐사선 보이저 1·2호가 42년 비행한 거리가 빛의 속도로는 하루도 안 된다. 태양의 크기는 지구의 100만 배다. 그래서 빛까지 빨아들이고 시공간도 왜곡되는 곳인가. 다음달 20일부터 기준이 바뀌는 초·㎏·m 등 극(極)미시 단위의 영역과 극단적으로 비교된다.
아인슈타인, 호킹 같은 블랙홀 이론가들은 M87이라는 이 블랙홀의 존재를 모른 채 떠났다. 하지만 그런 과학자들의 학문적 성취는 여러 분야의 첨단기술뿐 아니라 문화 예술에도 깊은 영감을 줬다. 가령 미국이 현대 자국 문화의 아이콘처럼 여기는 영화 ‘스타워즈’도 이런 우주 탐구와 맥이 닿는다. 미국은 공상과학을 넘어 산업과 안보의 전진기지로 우주 공간을 선점한 지 오래다. 천자문에서 우주에 대한 경외감을 표했던 중국의 후예들도 ‘우주굴기’에 나섰다. 한 꺼풀 벗길수록 신비를 더해가는 우주, 닫힌 문 가운데 하나쯤은 우리 기술로 열어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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