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신/이인혁/노유정 기자 ]
대한민국이 ‘마약 오염국’이 되고 있다. 매달 마약사범으로 입건되는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 국민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인 ‘마약청정국’ 타이틀을 내려놓은 지 이미 3년이 지났다.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범죄로 검거된 사람은 1만2613명에 달했다. 마약 단속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해외에서 생활해본 사람이 많아지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마약이 유통되면서 일반인도 쉽게 마약에 노출된 결과다.
마약류 사범은 재범률이 36%로 높다. 중독성이 강한 데다 매년 8000명 정도의 마약 초범이 발생하고 있어 국내 마약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이 지난해 압수한 마약은 517.2㎏으로 전년(258.9㎏) 대비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이 중 필로폰 압수량은 197.9㎏으로 전년(30.4㎏)의 6.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거래 가격도 치솟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필로폰 1g의 도매가격은 285달러 수준. 중국(59달러) 홍콩(46달러)은 물론 미국(209달러) 싱가포르(117달러)보다 비싸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마약류 범죄 규모는 통계의 20배 정도로 추산한다”며 “매년 8000여 명이 초범으로 검거되는 점을 고려하면 해마다 16만 명가량의 마약 중독자가 양산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 씨(31)가 연예인의 권유로 마약을 했다고 주장한 데 이어 방송인 하일 씨(로버트 할리·60)가 마약 혐의로 체포됐다. 앞서 SK그룹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의 손자 등 재벌 3세들이 고농축 대마 액상을 샀다가 구속됐다. 그러나 마약범죄는 재벌이나 연예인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경찰은 최근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네구매자인 척 돈을 보냈더니 실제로 대마초가 왔다. 돈을 보낸 계좌를 역추적해 공범을 잡고 보니 10대 고등학생이었다.
SNS서 가상화폐로 마약 거래…한국은 동남아 조직의 '황금시장'
마약이 대중화되면서 한국은 국제마약조직의 타깃 시장으로 부상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과거 한국 중국 일본에서 마약을 생산, 유통, 소비하는 ‘백색의 삼각지대’가 2010년대 이후 부활했다”며 “폭력조직과 연계해 ㎏단위의 마약을 들여오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SNS로 ‘#아이스팝니다’
유튜브나 트위터, 텀블러 등에서 마약을 뜻하는 은어 ‘떨(대마)’, ‘아이스(필로폰)’, ‘빙두(북한산 필로폰)’ 등을 검색하면 마약을 판매한다는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약 판매자로 추정되는 이들은 게시물에 SNS 아이디 등을 써놓는다.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 등의 메신저를 이용한 비(非)대면 거래로 이뤄진다. ‘던지기(구매자가 값을 지급하면 판매자가 특정 장소에 마약을 두고 나중에 찾아가는 방법)’로 팔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면 판매자도 구매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 투약자가 검거되더라도 SNS에 마약상이 여전히 넘쳐나는 이유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인터넷 마약류 범죄 관련 수사 건수는 2014년 8건에서 2017년 54건으로 늘었다. 수사 단계까지 가지 않고 게시물을 차단하거나 삭제 요청을 한 건수는 같은 기간 345건에서 7890건으로 급증했다. 검찰 관계자는 “인터넷과 SNS를 이용해 기존에 마약을 해본 경험이 없는 일반인까지 국내외 마약 공급책과 쉽게 연락을 주고받게 되면서 마약 사범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원 마약사범은 2013년 335명에서 2017년 522명으로 4년 새 64.7% 늘었고, 마약 혐의로 검거된 주부들 역시 같은 기간 106명에서 152명으로 43.3% 증가했다.
‘먹는 마약’으로 시장 커져
국내 마약시장은 향정신성 의약품(향정)이 휩쓸고 있다. 사법당국은 마약류를 마약과 향정, 대마로 분류한다. 마약은 헤로인과 코카인 등으로, 마약 원료로부터 추출된 물질이다. 향정은 화학약품을 합성해 제조한 물질로 오·남용하면 인체에 해를 가하는 필로폰과 엑스터시가 꼽힌다. 최근 클럽 버닝썬 사태에서 문제가 된 ‘물뽕(GHB)’, 연예인과 재벌이 때때로 상습투약 의혹에 휩싸이는 프로포폴도 향정에 포함된다.
대마·마약·향정 중 수사당국에 가장 많이 압류된 마약은 7년째 향정이 차지하고 있다. 매년 비중이 76~82%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향정은 계속 새로운 마약으로 진화하는 상황”이라며 “대다수가 먹는 약 형태로 제조되기 때문에 거부감이 덜해 마약 중독의 통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에서 대두하는 마약류는 물뽕, 필로폰, 엑스터시, 케타민, LSD, 야바 등이다. 이들은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며 클럽과 유흥가를 통해 퍼지고 있다. 이 중 필로폰은 1회 투입량(0.03g)이 시중에서 10만~20만원에 거래된다. 대마는 g당 15만원, 엑스터시는 한 알당 7만~8만원대로 알려져 있다. 최음제로 알려진 ‘야바’는 저렴한 가격 때문에 시장이 커졌다. 현경욱 노원경찰서 마약팀장은 “연예인 마약사건이 터지거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 행사로 단속이 세지면 ‘물(마약)이 말랐다’고 소문이 돌며 가격이 폭등한다”며 “국내에선 마약 생산이 안되기 때문에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백색 삼각지대’ 부활
한국 내 마약 수요가 늘면서 국제 마약조직도 한국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에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외국산 마약류 압수량은 2017년 32.6㎏에서 지난해 298.3㎏으로 815%나 급증했다. 국내에서 검거된 외국인 마약사범 수도 2012년 359명에서 2017년 932명으로 2.6배 늘었다.
국내 마약가격은 국제시세보다 훨씬 높아 마약 공급상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필로폰 g당 도매가격은 285.3달러다. 베트남(45달러) 홍콩(46.5달러) 중국(58.6달러)에 비하면 5~6배가량 높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마약을 사들여 국내에 풀기만 해도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마약 밀반입 수법도 고도화됐다. 이들은 해상으로 운송되는 화물에 대해서는 관세청이 전수조사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린다. 지난해 대만인 장모씨(25)가 마약을 기계류에 숨겨 보내 세관의 엑스레이 검사를 통과해 마약을 유통하다 검거됐다. 장씨가 들여온 필로폰양은 112㎏. 시가 3700억원 규모였다.
김순신/이인혁/노유정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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