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선제적 유동성 확보 영향
[ 임현우 기자 ] 지난해 은행 저축성예금 중 잔액 10억원을 넘는 고액 계좌의 규모가 8년 만에 최대 폭으로 불어났다. 기업들이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금 쌓기’에 나선 영향으로 분석됐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은행 저축성예금(정기 예·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계좌에 들어 있는 총 예금은 565조7940억원이었다. 1년 전보다 66조6050억원 늘어 증가 폭이 2010년(79조4220억원) 이후 가장 컸다. 증가율도 13.3%로 8년 만에 제일 높았다. 전체 저축성예금 증가율(7.3%)의 두 배 수준이다.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의 증가율은 2015년 9.2%, 2016년 7.0%, 2017년 7.2%에 이어 지난해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보다 기업을 중심으로 고액 예금이 큰 폭으로 불어났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 대신 선제적인 유동성 확보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하방 리스크(침체 위험)가 커지는 상황인 만큼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고 보수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4.2% 줄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9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고액 저축성예금 계좌 수는 지난해 말 기준 약 6만7000개로, 1년 새 5000개가량 늘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규제 등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들이 은행에 돈을 쌓아두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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