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 기자 ] “직무급제를 도입할지 호봉제를 유지할지 공공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건데 누가 호봉제를 포기하겠습니까.”
정부가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보도(본지 4월 13일자 A1, 3면 참조)를 반박하며 내놓은 기획재정부의 해명자료를 보고 한 공기업 임원 A씨가 한 말이다.
기재부는 “정부는 공공기관의 특성을 반영해 노사합의·자율로, 단계적·점진적으로 직무급 도입을 추진 중”이라며 “직무급제를 포기하거나 무산됐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A씨는 “노조가 반대하는데 노사 합의와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은 실행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119개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한 달만에 이를 호봉제로 되돌릴 수 있게 해 지금은 대부분 호봉제로 회귀한 상태다.
직무급제는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로 현 정부가 호봉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기술직, 사무직, 단순 노무직의 임금체계를 완전히 달리하는 식이다. 한 공기업 노조위원장에게 직무급제에 관한 의견을 물으니 “어떤 직무는 중요하니 돈을 많이 주고 어떤 직무는 중요하지 않으니 돈을 적게 주겠다는 건데 ‘내 직무는 덜 중요하니 돈을 적게 받아도 된다’는 걸 수긍할 조합원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실적에 따른 성과는 어느 정도 가늠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성과연봉제가 낫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기재부 해명을 궁색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2017년 말 공공기관에 적용할 직무급제 모델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표에 도움이 안 된다”며 미뤄달라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작년 말 “2019년 상반기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최근 또다시 내년 4월 총선까지 이를 연기하라고 요청했다. 표를 의식한 여당이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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