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주의 결핍 우려되는 'AI 입법'

입력 2019-04-15 17:26  

김중권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국회의 본래 소임은 입법인데 정파적 이해 탓에 시급한 입법이 정체되고 있다. 그럼 인공지능(AI)의 자기학습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입법하면 어떨까.

AI를 도입해 입법한다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다. 우선 법률을 포함한 관련 분야 전문가와 정보처리 전문가가 알고리즘을 생성하며, 여기에는 직접 이해관계자의 찬반 논거와 의견이 포함된다. 이런 개별 정보블록을 자기학습 알고리즘의 소프트웨어가 법률제안자가 정의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요도에 따라 독자적으로 저울질한다. 이와 병행해 이해당사자의 반론이 타당성이 있는지 검토하고 그것을 고려할지도 판단한다. 최종적으로 AI는 이렇게 생성된 정보의 형상을 법률 형식으로 변환시킨다.

문제는 AI를 이용한 이런 입법 과정 및 결과가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대의제하에서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가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다. 따라서 입법 과정에 AI를 사용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성의 요구 수준을 저해하는지가 문제다.

입법 현실에서는 이미 해당 분야의 많은 전문가가 입법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입법에 인적 자문이 동원되든, 지능형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든 차이는 없다. 입법에 AI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의회의 결정권을 어떻게 견지하느냐다. 의회가 국민에 의한 선출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갖기에 의회는 자신의 권한 행사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AI가 아무리 진보한다 하더라도 단지 입법을 지원하는 데 그친다. 입법 과정에서 의원의 고유한 입법권이 훼손되거나 의원의 고유한 임무가 대체돼서는 안 된다. 초안 작성 및 위원회 심의단계에서의 준비작업이 전적으로 AI에 의해 진행된 결과 의원들이 충분한 독회를 통해 관련 내용을 숙고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결핍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민주주의 원리의 요체는 힘의 집중이 아니라 분산인 반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AI에는 집중의 메커니즘이 주효하다. AI 시대로 갈수록 심화되는 집중의 메커니즘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민주주의 원리에 더 충실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 민주주의, 법치주의와 같은 기본명제에 철저한 주체적 자아를 견지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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