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형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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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경제가 만든 남북한 격차는 23배로 벌어진 1인당 국민소득이 웅변한다.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MIT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적했듯이, 포용적 제도를 가진 한국이 ‘경제기적’을 이룰 때 착취적 제도의 북한은 ‘경제 재앙’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격차를 보건·의료 분야에서 엿볼 수 있다. 최근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19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남북한 기대수명 격차는 1969년 1년(남 60세, 북 59세)이던 것이 50년 만에 11년(남 83세, 북 72세)으로 벌어졌다. 지난 25년간 한국이 10년 늘 동안 북한은 4년 오르는 데 그쳤다.
북한의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2명으로 한국(3명)의 7배다. 이는 공식통계일 뿐, 실제로는 100명을 넘을 것이란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다. 출생아 10만 명당 산모 사망률은 한국이 11명인데 북한은 82명이다. 어린이 빈혈이 25%이고 감염병 사망률은 3.5배, 결핵유병률은 5배다. 기생충 감염률도 청소년 35.5%로 한국의 약 12배다.
눈에 보이는 신장(身長)도 마찬가지다. 영국 임피리얼칼리지 연구팀에 따르면 한국의 20대 평균키는 남(174.9㎝)·여(162.3㎝) 공히 아시아 최장신에 든다. 지난 100년간 남자 15.1㎝, 여자 20.1㎝ 폭풍 성장해 성장폭에서 여자가 세계 1위, 남자는 3위다. 해방 전 한국보다 컸던 북한은 남녀 모두 3㎝가량 작다.
유아·청소년은 격차가 더 확연하다. 탈북 청소년은 한국의 같은 또래보다 4~6㎝ 작다. 7세 남아에서 남북한이 12㎝나 벌어졌다. 120만 군대를 유지하는 북한은 몇 해 전 징집 하한 신장을 150㎝에서 142㎝로 낮췄다. 총을 어깨에 메면 끌릴 정도라는 얘기다.
1970년대만 해도 북한이 이렇지는 않았다. 1999년 발간된 미 CIA의 ‘북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60년대 초 국가 예방접종 시스템을 만들고, 주민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만큼 위생검사도 철저히 했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위생·의료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만성 영양실조, 신장·체중 감소, 질병·감염 증가와 수명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초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은 서독보다 수명이 남자 3.2년, 여자 2.3년 짧았다. 이를 극복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남북한의 수명·건강·의료 격차를 좁히려면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까.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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