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 등 '노조에 기운 운동장' 바로 세워야

입력 2019-04-16 17:51  

ILO 협약 경사노위안에 노사 모두 반발

'노조할 권리' 편든 공익위원안…극한투쟁 도화선 우려
경영계 "노조 힘 너무 강해…국제관행 맞게 균형 잡아야"
최저임금 개편 등 노동법안과 '빅딜'은 기업 부담 키울 것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 최종석 기자 ]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놓고 노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해 7월부터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를 구성해 노·사·정 논의를 거듭했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오히려 논란은 확산하는 양상이다. 노동계는 “한국의 노동권이 국제 기준에 못 미쳐 유럽연합(EU)과의 통상마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가뜩이나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ILO 협약 비준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직후 ILO 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추진해 노동계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경사노위는 8개월여 논의 끝에 지난 15일 노사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전문가로 구성된 제도관행개선위 공익위원들이 마련한 방안을 발표했다. 노동계 요구를 대폭 수용한 방안으로, 경영계는 들러리만 섰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사 간 합의 불발로 ILO 협약 비준의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ILO 협약은 국제적으로 적용되는 노동기준으로 모두 189개다. 이 가운데 ILO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를 반영한 기본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근로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균등처우에 관한 8개 협약으로 한국은 4개를 비준했다. 미비준 상태인 결사의 자유 협약(87, 98호)과 강제근로 금지 협약(29, 105호) 중 경사노위는 이번에 결사의 자유 협약을 논의했다. 노동조합 설립, 운영, 활동 등 노사관계와 주로 관련돼 있어서 비준하려면 노동조합법을 먼저 바꿔야 한다.

공익위원안에 담긴 내용은 크게 12개다. 노동계가 요구한 7개는 대부분 그대로 반영됐지만 경영계의 5개 요구안은 거의 제외됐다. 노동계 요구는 ‘노조할 권리’로 압축된다. 해직자·실직자의 노조 가입과 임원 활동을 허용하고, 전임자 급여는 금지 대신 노사자율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조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노동계가 오랫동안 공들여온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해직 교사 가입으로 법외 노조가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그렇다. 일단 법외 노조가 되면 단체교섭을 하거나 조합비 공제, 사무실 제공 등 법적으로 가능한 노조의 혜택과 권리가 없어진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해직자 문제로 2009년부터 법외노조였다가 지난해 합법노조가 됐다.


노동계에 치우친 경사노위안

주로 교원·공무원 노조와 관련된 사안으로 보이지만 일반 기업의 우려도 크다. 산별노조가 일반적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기업별 노조가 대부분이다. 개별기업으로선 외부인의 노사문제 개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사 갈등을 증폭시키고 극한투쟁을 야기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어서다.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조항을 폐지하라는 요구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조합원 수에 비례해 일정 시간의 조합활동 시간만 인정해주는 근로시간 면제제도가 2010년 도입되기 이전에는 노조 전임자가 너무 많은 것이 항상 문제였다. 회삿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노조 일만 하는 전임자가 수백 명에 달하던 기업도 있었다. ILO 협약 98호는 노조 전임자 급여와 관련해 정부 개입 없이 노사 자율로 정하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국제 관행은 노조 전임자 급여나 노조 경비는 조합비로 자체 충당한다. 사용자가 부담할 경우 노조의 자주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서구 노동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균형 요구한 경영계안 반영 미흡

5급 이상 공무원이나 소방관들의 노조 가입, 택배기사 보험모집인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노조 가입도 논란이 많고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다. 국민 생활과 산업현장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는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동계 요구를 대폭 반영한 1차 논의 결과를 지난해 11월 내놨다. 당시 경영계는 국제 관행에도 맞지 않는, 노측으로 기운 운동장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5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부당노동 행위 형사처벌 폐지, 사업장 점거 파업 금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지수에서 늘 세계 최하위권을 차지하는 한국의 노사관계는 노조의 힘이 지나치게 강한 데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다른 나라에서 사업장 점거는 파업 때일지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용자의 재산권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조업권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당 노동행위 형사처벌도 외국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노조법에 부당 노동행위 규제를 두고 있는 곳은 한국, 미국, 일본 정도인데 유독 한국만 형사처벌한다. 노사 당사자 간의 관계를 다루는 노조법은 분쟁 발생 때 원상회복을 원칙으로 한다. 국가의 형벌권을 동원하면 원만한 관계 복원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사용자 측은 지나치게 짧은 단체협약 유효기간도 문제로 지적한다. 최장 2년이지만 임금교섭을 포함하면 단체교섭은 해마다 이뤄지고 있다. 노사 갈등이 잦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에선 5년 이상인 기업도 상당수다.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은 사용자의 대항권 차원에서 거론된다. 현행법으로 사용자의 유일한 대항수단은 직장폐쇄다. 이마저도 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에 들어간 이후에만 가능해 노조가 불법파업하면 사용자의 대항수단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 만큼 대체근로를 통해 기업활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계 요구안 가운데 경사노위가 받아들인 것은 단협 유효기간 연장과 사업장 점거 금지에 불과하다. 그나마 단협 유효기간은 3년으로 연장한 데 그치고,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도 일부 수용한다는 정도다. 경영계가 “정부가 주도하는 논의에 들러리만 선 꼴이 됐다”고 하소연하는 배경이다.

경사노위 논의 절차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1차 논의 결과라며 노동계 안을 대폭 수용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한 이후 경영계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일부 공익위원이 사퇴하는 등 내홍도 겪었다.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정부위원 외에 공익위원을 뒀다. 공익을 대표하는 중립적인 위치라지만 사실 공익위원들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을 반영해 위촉됐다. 논의 과정에서 경영계 의견을 전달하던 공익위원이 사퇴했는데, 논의가 이어짐에 따라 “논의 자체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커지는 정치적 빅딜 우려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 기조에 맞물려 경사노위 주도로 추진되는 ILO협약 비준은 예상대로 노사 간 의견 접근보다는 노동계에 치우친 채 일단락되고 국회로 공이 넘어가는 형국이다. 국회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등 굵직한 노동법안이 무더기로 계류돼 있다. 기업들은 국회가 이 법안들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고받는 식의 빅딜을 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주 52시간 근로제의 문제를 보완하는 탄력근로제나 최저임금 결정 절차를 손보는 법안은 노사 관계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ILO협약 비준과 교환 가능한 등가물이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빅딜이 이뤄질 경우 더욱 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의 몫이 된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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