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분양 41% 계약 포기 물량
5000여명 몰려 33 대 1 경쟁
[ 배정철 기자 ]
서울에서 일반분양의 41%에 달하는 가구가 계약을 포기한 서대문구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가 무순위 청약에서는 5000여 명의 청약자를 끌어모으며 선전했다. 정부의 각종 규제로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현금 부자’만 무순위 청약 혜택을 누리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중산층 실수요자는 높은 분양가와 대출 규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아파트 계약을 포기하는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중산층에겐 ‘그림의 떡’
17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174가구가 미계약으로 남아 이날 무순위 분양(사후 접수)을 한 서울 서대문구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가 5835개의 청약통장을 끌어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33.5 대 1, 최고 134.4 대 1의 경쟁률이다.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의 분양가가 3.3㎡당 2469만원으로 책정돼 ‘고분양가 논란’에 미계약자가 다수 쏟아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날 청약경쟁률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소형 아파트인 전용면적 48㎡가 134.4 대 1을 기록해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18가구 공급에 1970명이 몰린 전용 59㎡는 경쟁률 109.4 대 1을 기록했다. 특히 분양가가 9억원을 웃돌아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 전용 114㎡도 31.3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청약 조건이 안 되지만 자금이 풍부한 ‘현금 부자’는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도보 3분 거리의 역세권과 같은 입지를 높이 평가해 무순위 청약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 한 정당계약에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 기준인 9억원을 기점으로 대출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는 중산층 청약자들이 계약을 대거 포기하는 바람에 미계약자가 속출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9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계약금과 잔금을 포함해 집값의 60%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며 “그만한 자금력이 없는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자들만 유리한 무순위 청약
무주택 청약자가 자금력 부족으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현금 부자들의 ‘줍줍’(미계약 물량을 줍고 줍는다는 뜻)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주택자들이 9억원에 달하는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해 계약을 취소하면 자금력이 풍부한 다주택자들이 자격 제한이 없는 무순위 청약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부동산 시장에 미계약 물량이 다수 나오면서 무순위 청약제도가 기존의 청약제도를 왜곡하는 데 이르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태릉 해링턴 플레이스’는 지난 2월 560가구를 일반분양해 62가구의 계약에 실패했다. 하지만 다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해 평균 61.85 대 1, 최고 36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건설회사도 미계약이 다수 발생하는 분양시장의 ‘이상 현상’을 고려해 무순위 청약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직방이 올해 아파트 분양시장을 분석한 결과 서울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8.6 대 1로 지난해 4분기(37.5 대 1)에 비해 25% 수준으로 폭락했다. 한양건설은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와 ‘한양수자인 구리역’에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해 각각 1만4376명과 4000여 명이 몰려 주목받았다.
조은상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서울지역 1순위 청약에 4000명이 모이는 데 그쳤지만, 무순위 청약에 1만 명 이상이 몰렸다는 사실을 볼 때 자금력이 있는 청약자가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미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지역에 청약 규제를 받지 않는 ‘무순위 청약 제도’를 이용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