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일부에 깃든 감각이 없어질 때가 있다. 보통은 마비(麻痺)라고 적는다. 의학적으로는 마취(麻醉)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통증을 없애고 수술을 해야 할 때 곧잘 취하는 행위다.
앞의 글자 麻(마)는 보통 식물의 일종인 삼을 지칭한다. 글자 구성을 보면 집을 가리키는 (엄)에 삼의 껍질인 (빈) 두 개가 합쳐졌다. 집에 삼을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 늘어놓은 모습이다.
그 삼으로 만든 옷이 마의(麻衣), 삼실로 짠 굵은 자루가 마대(麻袋)다. 마지(麻紙)는 삼의 껍질이나 삼베로 만든 종이다. 글자는 때로 ‘깨’를 가리킨다. 호마(胡麻)라고 하면 참깨와 검은 깨의 총칭이다. 지마(芝麻)도 마찬가지다.
삼의 껍질에는 특별한 약 성분이 없다. 그러나 뿌리와 씨앗, 잎에는 환각 작용을 일으키거나 사람 신체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이 때문에 麻(마)라는 글자는 일정한 약리 현상과 함께 쓰일 때가 있다.
우선은 마약(麻藥)이다.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켜 아주 무력하게 하는 까닭에 사회의 지탄 대상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앞 글자를 ‘저리다’는 뜻의 痲(마)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삼의 한 종류인 대마(大麻)는 환각 작용의 담배 재료로 많이 쓰여 역시 물의를 빚곤 한다.
뭔가 깊이 빠져들 때 心醉(심취)라고 적는다. 제법 높은 경계를 향하려는 욕망이다. 술에 깊이 취하는 경우는 深醉(심취)라고 한다. 역시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약에 심취해 사법의 심판대에 서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요즘 마약의 물결이 아주 거세다. 그로부터 퍽 자유로워 ‘마약 청정국’으로 꼽히던 한국이 연예인을 필두로 환각 행위가 도처에서 벌어져 ‘마약 유행국’으로 바뀐 지 제법 오랜 모양이다. 몸조차 잘 못 가누는 인사불성(人事不省)의 단계에 이미 접어든 듯하다.
사람이 의식을 잃는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혼몽(昏蒙), 이어 의식이 더 멀어지는 혼미(昏迷),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자칫 생명을 놓치는 혼수(昏睡)다. 우리는 곧 어느 단계에 이를까. 나라 상황이 여러 가지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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