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최초로 확인한 '블랙홀'…우주의 신비가 벗겨지다

입력 2019-04-22 09:01  

뉴스 인 포커스


[ 이해성 기자 ] 국내 1000만여 관객이 본 SF(공상과학)영화 ‘인터스텔라’에선 주인공이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이후 다른 시공간 속 자신과 딸을 본다. 비록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책장을 움직이는 등 마주한 이(異)공간에 물리적 영향을 주는 모습까지 영화에 담겼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지구 크기 망원경’으로 블랙홀 처음 확인

지난 10일 초거대블랙홀 ‘M87’의 모습이 최초로 공개됐다. 인류사적 사건이다. 블랙홀 탐사 전문 글로벌 연구팀 EHT(사건지평선망원경)가 전 세계 8개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블랙홀 모습을 처음으로 ‘재현’했다. 실제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은 건 아니다.


EHT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헤이스택관측소, 미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독일 막스플랑크전파연구소 등 내로라하는 세계 연구기관 소속 과학자 20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 국내 연구소들도 제휴기관으로 공동 연구했다.

어떻게 블랙홀을 재현했을까. 거대전파망원경은 서로 연결하면 그 반경만큼의 분해능(확대능력)을 갖는다. 예를 들면 한국천문연구원의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은 서울 연세대, 울산대, 제주 서귀포 등 세 곳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한국 땅 크기의 분해능’을 갖는다. EHT는 칠레, 남극,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에 있는 8개 거대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의 망원경을 만들었다. 이 망원경의 분해능은 한라산에서 백두산 끝자락에 있는 머리카락 한 올도 자세히 볼 정도다.

지구 질량의 58~72억 배…환산 크기는 380억㎞

그동안 영화, 서적 등에서의 블랙홀 모습은 모두 물리학적 이론에 기반해 상상한 이미지였다. EHT팀이 이번에 재현한 M87이 블랙홀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다. M87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빛이 5500만 년 동안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무게는 태양 질량의 58억~72억 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사건지평선, 즉 블랙홀의 크기는 약 380억㎞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가지를 감안해 환산한 크기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커 극단적으로 압축된 천체다. 지구 질량만 한 블랙홀의 지름은 탁구공의 절반보다도 작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선이다. 이 경계를 넘어가면 시공간이 바뀐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은 이 경계를 넘어간 것이다. M87 블랙홀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는 950억㎞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천문연구원 측은 “이번 블랙홀 관측은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의 궁극적 증명”이라고 밝혔다. 블랙홀 아래 고리 반원 빛이 밝고 위쪽 반원이 어두운 이유는 아래쪽 빛은 지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반면, 위쪽 고리 빛은 멀어지고 있어서다. 천문연 측은 “유치원생도 아는 존재가 블랙홀”이라며 “블랙홀의 존재 규명은 인간이 갖고 있는 ‘극단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켰다는 의미도 크다”고 덧붙였다.

“아인슈타인이 맞았다”

불세출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어떤 물체가 존재하면 주변 시공간은 물체의 질량 등에 영향을 받아 휘어지고, 질량이 크면 클수록 시공간이 더 많이 휘어진다’는 내용이다. 바꿔 말하면 시간의 속도는 행성마다 다르다. 시간은 중력에 따라 ‘상대적으로’ 흐른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영국 천문학자 에딩턴이 1919년 아프리카 해안 개기일식 때 태양 주변 빛이 휘어지는 것을 관측하면서 처음 검증됐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빛의 속도는 불변이며,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에너지와 질량은 호환된다’로 요약된다. 빛이 닿을 수 없는 블랙홀에서는 시공간이 일그러진다.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고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 그 경계가 바로 사건지평선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나선형 구조를 ‘강착 원반’이라고 부른다. 이때 어마어마한 자기장 응축으로 플라즈마 형태의 가스, 일명 ‘제트’가 빛의 속도로 분출한다.

이제 인터스텔라 주인공의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답이 나왔다. 영화는 영화다. 블랙홀 안으로 들어간다면 일단 물리적 형태 보존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무사히 다른 시공간으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영화에서처럼 책장을 움직이는 등 영향을 미치긴 힘들다.

■NIE 포인트

우주의 생성과 운행 원리를 설명하는 다양한 물리·천체학 이론을 정리해보자. 블랙홀이 인류 최초로 확인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블랙홀의 의미는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IT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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