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9일까지 189점 선봬
[ 김경갑 기자 ] 축 늘어진 버들가지는 미세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휘날린다. 꽃사슴은 항상 주위를 경계하면서 나뭇잎이 뒹구는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란다. 버드나무가 ‘휘둘림’에 비유된다면, 사슴은 ‘놀람’의 상징이다. 국내 화단에서 이름이 낯선 ‘카레이스키’(옛 소련 고려인) 미술인 변월룡 화백(1916~1990·사진)은 러시아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자신과 소수민족의 비애를 버드나무와 꽃사슴으로 즐겨 묘사했다.
한평생 이국땅에서 경계인으로 살다간 변 화백의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지난 19일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16년 ‘백년의 신화-변월룡’전을 연 이후 3년 만에 상업화랑 전시 공간에 처음 변 화백의 작품이 걸렸다.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이란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는 변 화백이 러시아 화단에서 활동했던 학창 시절부터 1980년대까지 일기를 쓰듯 작업한 유화, 동판화, 드로잉 등 189점을 선보인다. 러시아 정통 사실주의 화풍을 계승한 변 화백은 일제강점, 분단, 전쟁, 이념 대립 등 한국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 세계대전, 냉전, 개혁과 개방을 겪은 러시아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삶과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킨 재외동포 화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화 드로잉 등 189점 전시
변 화백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던 한인의 후손으로 태어나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다. 한민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러시아 최고 미술교육기관인 ‘일리야 레핀 레닌그라드 회화·조각·건축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35년 동안 이 대학의 교수로 일하며 일생을 보냈다. 1953년 소련과 북한 간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미술대 학장을 맡았던 그는 주체 미술로 변질되기 전 북한 미술교육 체제의 기초를 놓았다. 1954년 아내의 간청으로 잠시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에 휘말려 북한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의 치열한 디아스포라(이산)의 삶과 족적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1945년 세상을 떠난 모친을 추억하며 그린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에 암갈색 장독을 배치해 한국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낸다.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의 역동적인 모습을 잡아낸 작품은 작가의 초라한 상황과 처지를 차지게 녹여냈고, 러시아 나홋카항의 뒤틀린 소나무를 푸른색 필치로 묘사한 작품은 고국을 향한 열망을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무용가 최승희 초상화 눈길
변 화백이 1953~1954년 평양에서 작업한 작품들도 관람객을 반긴다. ‘양지(陽地)의 소녀’는 붉은색 저고리를 입고 햇볕 따뜻한 양지에 앉은 한국인 소녀의 모습을 정성스러운 필치로 묘사했다. ‘햇빛 찬란한 금강산’은 한평생 이방인으로 살면서 외롭고 힘겨웠던 삶을 대변하는 대표작이다. 멀리 금강산의 절경과 큰 소나무들을 보랏빛 구름과 함께 그려 고국의 아름다움을 정성껏 풀어냈다. 6·25전쟁 중 남과 북에 억류됐던 포로들을 판문점 일대 완충지대에서 교환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1953년 작 ‘판문점에서의 북한 포로 송환’과 ‘조선분단의 비극’에서는 한국 근대미술의 다층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
한복을 입고 붉은 부채를 든 최승희의 모습을 그린 1954년 작 ‘무용가 최승희 초상’은 샘처럼 솟아나온 붉은 색깔과 몸짓 율동의 하모니를 살려내 사실주의 화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변 화백은 평양 체류 시절 최승희를 비롯해 화가 배운성과 문학수, 문학인 홍명희 등 당대 유명인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아내 빈약한 한국 서양미술의 토양을 더욱 풍성하게 가꿨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문영대 씨는 “변 화백은 통일 한국 미술사에서 남과 북을 잇는 연결고리 구실을 할 작가”라며 “아카데미즘과 사실주의를 망라한 그의 작품은 한국 미술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