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2015년 이후 퇴보한 韓 경제 위상…간판기업 신용도 위태롭다

입력 2019-04-23 17:36  

글로벌 재평가 작업 본격화된 한국 경제

세계 3대 평가사 심사 시작…대기업 신용전망 '부정적'
금리인하 통해 성장률 끌어올려야 거시경제 위험 해소
남북문제, 4자 관계 속에 추진해야 지정학적 위험 줄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 한상춘 기자 ] 한국 경제 재평가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달 들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를 필두로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평가사의 올해 상반기 심사가 시작됐다. 다음달에는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의 연례 심사도 예정돼 있다. 한국 경제의 대외 위상은 정체된 지 오래다. 엄격히 따진다면 퇴보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국가신용등급은 S&P가 한 단계 상향한 2016년 8월 이후 2년 넘게 ‘전망’과 ‘등급’ 조정에서 모두 변화가 없다. MSCI 조정도 2015년 선진국 예비 명단에서 탈락한 지 4년이 다 돼가지만 재진입 기회를 엿보지 못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설마’ 했던 한국 간판기업에 대한 해외 시각이 국가신용등급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디스와 S&P가 작년 10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에 이어 올초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지난 3월에는 LG화학과 SK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용등급 평가는 두 단계다. ‘실제 등급 조정’과 ‘전망’이다. 실제 등급 조정에 앞서 예비단계 성격인 전망은 ‘긍정적’ ‘안정적’ ‘부정적’으로 나뉜다. 한국 간판기업에 내린 부정적 평가는 지적했던 악화 요인이 개선되지 않으면 6개월 뒤 실제 등급을 내리겠다는 의미다. 이번 재평가 작업 결과는 중요하다. 더 이상 대외 위상이 올라가지 못하면 ‘중진국 함정’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 측면에서는 ‘위장된 축복’ 논쟁의 결말이 날 가능성이 높다. 올 들어 갑작스러운 외국인 자금 유입의 근거로 국내 증권사는 저평가 요인을 꼽아왔다. 하지만 저평가 요인은 금융위기 이후 주가 예측이나 투자 권유 차원에서 계속 거론돼온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른 요인이 더 크다는 의미다.

지금은 대(大)전환기다. 경기 측면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이 다시 주춤거리고 있다. 통화정책 면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2014년 10월 양적완화 종료 이후 추진해온 출구전략을 마무리하기 전 중단할 뜻을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장기저리대출프로그램(TLTRO)을 재도입하기로 했다.


'중진국 함정' 논의 본격화할 듯

대전환기를 맞아 금리차와 환차익을 겨냥한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은 글로벌 자금 흐름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은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힐 때까지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셸터(shelter·피난처)’ 기능이다. 투자국 지위로 볼 때도 한국은 파이낸셜타임스(FTSE) 지수로는 선진국, MSCI 지수로는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선진국(미국)과 신흥국(중국) 간 대립구조’로 특징지어지는 금융위기 이후 국제 금융질서에서 두 권역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한국과 같은 국가는 대전환기에 셸터 자금을 넣어둘 최적의 후보지로 평가된다. 반대로 선진국, 신흥국 어느 한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한국에 유입됐던 자금은 의외로 빨리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어떻게 조정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3대 평가사의 평가 기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가 중심이 돼 신용평가와 관련한 여러 규제 방안을 마련해왔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신용평가사의 독과점적 지위에 따른 무소불위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정보 공시, 투명성, 책임감 등을 강화했다. IOSCO는 각 신용평가사에 신용평가 방법론, 과거 실적 자료, 평가자 등을 공개하고 신용등급 산정 모형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해왔다. 신용등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신뢰성과 정확성을 제고하기 위해 평가모형과 방법론에 대한 공시 확대, 구조화 관련 증권 신용등급 표시 방법 개선 등의 방안도 마련했다.

또 하나 문제였던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주요국 정책당국은 신용평가사 관련 이해관계자에 대한 공시 확대, 신용평가업무의 독립성 확보 등과 같은 이해상충 방지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과 EU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신용평가사도 대부분 IOSCO의 권고를 수용하거나 강화해 적용해왔다.

3대 평가사도 개편된 신용등급 조정 국제기준에 맞춰 특정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왔다. 금융위기 이전보다 지정학적 위험 비중을 낮추는 대신 거시경제 위험, 산업 위험, 재무 위험 비중을 높였다. 특히 지정학적 위험은 경제 기초 여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신용등급을 조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새로운 개편 내용에 따라 각국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 실적을 보면 하향 조정 건수가 상향 조정 건수를 웃돌고, 관찰 대상도 부정적 대상이 긍정적 대상보다 많아 위기 이전에 비해 엄격해졌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신용등급이 올라간 국가보다 떨어진 국가가 더 많다. 그만큼 신중해졌다는 의미다.

신용등급 떨어진 나라 더 많아

한국 경제는 압축성장한 대표 국가로 분류된다. 대부분 압축성장한 국가는 초기에 미성숙된 노동력, 국내 자본 축적 미비, 사회간접자본(SOC)과 내수기반 취약 등을 감안해 수출지향적인 성장 전략을 채택한다. 압축성장한 국가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까지는 경제정책 운용이 세계적인 추세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하는 게 기본 성장 조건이다. 외국인 투자, 세제, 기업 정책 등을 ‘평평한 운동장’처럼 느낄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놓는 것이 시급하다.

평가항목별로 무디스, S&P 등이 경고한 거시경제 위험(산업 위험 포함)은 경기순환상으로 세계 경기가 좋을 때 순환 궤적보다 높은 성과를 내야 나빠질 때 찾아오는 위기론과 같은 피로증후군을 줄여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금리 인하 등을 통해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잠재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되, 미래 국부 창출 기여도가 높은 업종으로 산업을 재편하고 기업 정책을 펴 잠재 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

국가채무 악화 경계해야

재무 위험은 국가채무 비율이 40% 안팎으로 위험 수준인 70%보다 낮지만 너무 빨리 악화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악화 속도도 평가요소기 때문이다. 외화 유동성은 적정 수준보다 많아 ‘원고(高)의 저주’가 우려될 정도다. 핵심 국가로의 통화스와프 조정 등을 통해 2선 외화를 너무 많이 가져갈 필요는 없다.

올 들어 자주 지적되는 지정학적 위험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4자 관계 틀 속에서 풀어야 줄일 수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앞세워 △비핵화 추진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을 한꺼번에 가져가는 ‘원샷 딜’이나 수정된 ‘굿 이너프 딜’은 한계가 있다는 경고에 주목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미·중 무역갈등, 노딜 브렉시트, 중국 경기 둔화, 미·북 회담 결렬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너무 불확실하다. 더 이상 대외 환경이나 이전 정부와 현 정부, 여당과 야당, 사용자와 근로자 간 비판과 책임 전가에 머무를 수 없다. ‘프로보노 퍼블리코(pro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토대로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schan@hab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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