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충분한 방어권 줘야
회계심판원 도입 검토해 볼만
[ 하수정 기자 ] ▶마켓인사이트 4월 26일 오후 4시28분
“회계 위반으로 중징계를 받는 기업은 주가가 폭락하고 상장폐지 위기에 몰립니다. 존폐가 걸려 있는 중대 사안에 대해 감독당국의 2~3쪽짜리 조치서만 보고 기업들이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회계학회 특별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회계처리기준 위반에 대한 제재를 할 때 기업의 방어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원칙 중심 회계기준과 법적 이슈’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주제발표에 나선 김도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회계감리에 따른 제재절차를 살펴보면 공정거래위원회 행정절차에 비해 피조치자(기업, 회계법인)의 방어권 행사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감독당국이 통지하는 간략한 조치서만으로는 기업들이 제재의 근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며 “열람청구권은 본인이 제출한 문답서와 자료로 한정돼 있고, 대심제 역시 단순 의견 진술을 하는 창구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행정절차는 기업에 위반 사항과 핵심 증거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송부할 뿐 아니라 공정위 첨부자료에 대한 열람복사청구권이 주어진다. 공정위 심리가 시작되기 위해선 무조건 피심인(기업)이 출석해야 하고, 질문권과 증거조사신청권 등이 인정된다. 김 변호사는 “조세심판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회계심판원(가칭)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원칙 중심 국제회계기준(IFRS) 체제에서 법적 분쟁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회계처리 위반에 대한 중징계를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강태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회계 위반과 관련한 고의성 판단 및 형사 처벌은 기업의 존폐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IFRS는 회계처리에 재량권을 인정하고 다양한 대안을 허용하는데도 재무제표에 왜곡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이 이뤄진다면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는 “독일에선 IFRS 해석에 논란이 있는 경우 법 집행을 자제한다”며 “회계 오류에 대해선 징계하지 않고, 공시를 통해 시장에서 압력을 받도록 하는 간접 제재를 한다”고 소개했다. 조성표 한국회계학회장(경북대 교수)은 “체계적인 심의 과정을 구축하고, 전문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선문 금융위원회 회계감독팀장은 “대심제는 시행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대심제 적용은 상황을 봐가며 단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피조치자 권익 보호와 행정절차 효율화라는 측면을 모두 고려해 방어권 강화 관련 정책 마련을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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