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장 차별화로 전체 전망 의미 퇴색
정확한 근거나 빅데이터 선호현상 두드러져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자라면 어디든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런 타깃이 되는 곳이 전문가들이다.
유명한 부동산 강사 A씨는 지난해 전망을 '하락'으로 점쳤다가 1년 가까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강의를 나갈 때마다 청중들에게 한 소리를 들었고, 사무실로는 "당신 믿고 집 안 샀는데 이게 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럼에도 A씨는 '지금 오른 집값은 거품이다'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9·13대책 이후 집값이 하락하고 거래가 감소하면서 그의 얘기는 곱씹어보는 레파토리가 됐다. '상승' 전망은 틀렸지만, 시장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정확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시장 전문가들이라고 하더라도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정책이나 대책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더욱 그렇다. 인구증가율, 주택공급수, 가계대출 현황 등의 기본 데이터 외에도 정부의 정책기조까지 눈치를 살펴야 한다. 시장에서 의미있는 숫자가 무엇인지도 짚어내야 한다.
이 와중에 국내 부동산 시장은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 전체적으로는 하락해도 강남만 오르거나, 강남은 떨어지는데 지방 광역시만 상승하는 일이 다반사다. 지역 집값이 하락해도 꼿꼿하게 집값을 유지하는 아파트가 있는 반면, 입주와 동시에 급락하는 아파트도 있다. 현재 시장은 전체 시장의 흐름은 물론 지역별, 주택 유형별, 재고 혹은 분양 시장별, 단지별 등 나누기에 따라 시장이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상승'와 '하락'도 일반인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전문가들이 시장은 떨어진다는데 우리 동네 집값이 상승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제는 전체 시장에 대한 주장 보다는 '근거'가 무엇인가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보니 시장에서는 '족집게 강사'가 없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이 주최한 '제 2회 한경 집코노미 부동산 콘서트'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마련한 자리였다. 시장에서 '빅데이터 삼형제'라고 불리는 젊은 전문가들을 나섰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과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 조영광 대우건설 연구원 등이다.
이들의 결론은 상승, 하락, 강보합 등으로 갈렸지만 누가 족집게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관람객들은 시장 전체의 전망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전문가들마다 어떤 데이터나 무슨 근거로 주장을 하는지에도 관심을 보였다. 데이터를 갖고 각자의 다이어그램들을 펼쳐 보였다. 채상욱 연구원은 하락을 얘기했지만, 다이어그램에는 상승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요건들이 나열됐다. 다소 상승할 것으로 주장했던 조영광 연구원일지라도 '확실한 상승'과 '확실한 하락'을 보여주는 데이터들이 펼쳐졌다. 관람객들 사이에는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맹신 보다는 데이터에 근거한 확신들이 솟아났다.
부동산 시장은 주식 시장과는 달리 클릭 한 번에 매매를 할 수 없다. 단위도 크고 거래시장도 한정적이다. 청약이라면 몇년간 준비가 필요하다. 주식시장에 전업투자자가 흔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일반인이 전업투자자가 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부동산도 본격적인 투자의 대상이 됐다. 갭투자는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의 매매 가격과 전세금 간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이다. 말이 투자지 이익만 추구하려는 '투기'나 다름 없었다. 이제는 시장이 변하면서 갭투자에 물려 빚을 떠앉고, 갭투자를 추천한 족집게로 불렸던 스타강사들은 소송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부동산에서는 거의 처음 발생한 일들이다. 그러나 일반인 투자자가 많은 코스닥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있었던 수법들이다. 투자를 가장한 투기 수법이 '부동산'으로 옮겨간 모양새다. 주식시장에서 30년 가까이 이코노미스트로 활동중인 B씨는 지난해부터 이러한 분위기를 예견했다. 그는 "주식시장이 상승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주식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온갖 호재를 갖다 붙여서 파는 투기꾼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온다"며 "부동산 시장에도 거의 비슷한 패턴의 자칭 전문가들이 나오고 있는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투자 격언 중에 '달리는 말에 타라'는 말이 있다. 수급이 늘면서 상승하는 시장에 합류하라는 얘기다. 말의 상태나 어디로 얼마동안 얼마나 가는지를 타기 전에 알고 있다면 더없이 좋다. 하지만 달리는 말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금방 띈다. 남의 말을 듣고 달리지도 않는 말에 타거나 타고 보니 말이 아닐 수 있다. 어쨌든 투자에 대한 고삐는 투자자 본인이 쥐어야 한다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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