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노아의 홍수를 겪고 난 뒤 인간들은 하늘나라가 궁금해 바빌론에 바벨탑을 쌓는다.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의 헛된 욕망과 교만한 행동에 분노한 하느님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했다. 바벨탑은 결국 완성하지 못했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다.
16세기 네덜란드 최고의 풍속화가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이 1563년 완성한 ‘바벨탑’은 이런 성경 이야기를 차용한 걸작으로 꼽힌다. 16세기 유럽 섬유산업 도시 플랑드르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시각예술로 보여준다. 화면 중앙에 바벨탑을 크게 배치하고 사람과 집, 나무 등을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해 탑의 웅장함을 강조했다.
호위병과 건설 인부들로 둘러싸인 오만한 군주는 화면 왼쪽 하단에 배치해 왕의 절대적인 권력도 살려냈다. 군주의 과도한 허영심은 꼭대기가 구름에 닿을 정도로 점점 높아지는 탑에 반영했다. 바벨탑을 표현하면서도 당시 건설 장면, 건설 공법, 중장비도 매우 세밀하게 잡아냈다. 전체적으로 색에서 주는 느낌은 매우 따뜻하며 어찌 보면 정감있고 차분해 보인다. 정치사회적으로 오만한 욕망이 극에 달한 요즘 그림을 감상하며 바벨탑의 교훈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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