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에서 간편하게 질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진단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키워내려고 합니다.”
김한신 프리시젼바이오 대표(51)가 밝힌 포부다. 대전 대덕단지에 위치한 이 회사는 국내 체외진단 시장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주자다. 일본 스위스 등 해외에서 사업 협력을 하자는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이 회사가 보유한 독보적 기술력 덕분이다. 가령 독감 환자의 증상이 어느정도 심한지를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식이다. 지금까지 나온 진단제품이 증상 여부만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과는 차별화된 기술이다. 의료현장에서 그만큼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약부터 검사기까지 완비
프리시젼바이오는 진단시약 업체인 나노디텍과 진단 검사기 업체 테라웨이브가 합병해 2015년 설립됐다. 미국 뉴저지에 있는 나노디텍은 한인교포가 세운 회사다. 테라웨이브는 이미지센서를 만들던 정보기술(IT) 벤처로 출발했으나 보유한 광학기술을 기반으로 진단 검사기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두 회사에 모두 지분을 갖고 있던 혈당측정기 업체 아이센스가 합병을 주도했다. 진단 시약과 검사기를 모두 갖춘 사업구조를 갖게 되면 시너지가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나노디텍은 프리시젼바이오의 100% 자회사가 돼 미국 사업의 전진기지로 바뀌었다.
프리시젼바이오의 최대주주는 아이센스(지분율 36%)다. 하지만 회사 경영은 지난해 초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김 대표가 총괄하고 있다. 남학현 아이센스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아 주요 의사결정을 챙기는 정도다. 김 대표는 “프리시젼바이오와 아이센스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 협력 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바이오 전문가다. 연세대 생화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병역특례로 한일합섬 바이오연구소에 입사하면서 바이오산업에 발을 들였다. 이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바이오 등 신사업을 발굴하는 업무를 했다.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와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는 마케팅 등의 업무를 맡았다. 그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글로벌 마케팅을 경험하면서 얻은 노하우 등을 토대로 글로벌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
독자 브랜드 전략으로 승부수
프리시젼바이오는 초기에는 검사기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이나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사업에 치중했다. 하지만 수익이 일정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합류하자마자 사업 전략부터 바꿨다. 검사기 독자 브랜드 ‘엑스디아’를 내놨다. 제품 경쟁력도 끌어올렸다. 진단 시약과 검사기 모두 2세대 기술을 적용한 제품군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기존 1세대 진단제품은 금 성분이 들어간 특수물질로 진단하는 방식이다. 2세대 진단제품은 형광물질을 활용한다. 민감도는 10배 더 높고, 검출 범위는 30배 넓어졌다. 그만큼 더 정확하고 미세한 진단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프리시젼바이오의 주력 분야는 현장진단 중에서도 면역진단이다. 암 심근경색 등 질환을 혈액 속 특정 단백질 유무로 판정하는 기술이다. 혈액 속 DNA를 찾는 분자진단과는 다른 방식이다. 정확도는 분자진단이 더 뛰어나지만 진단 속도나 가성비에서 면역진단이 강점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대형병원에서 쓰는 대형 장비도 진단에 2시간 넘게 걸리는데 우리 회사의 진단장비는 15분 이내에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TnI, NT-프로BNP 등 심혈관 질환 진단제품이다. 대형 장비로만 분석이 가능했던 것을 특정 형광물질을 이용해 소형장비로도 빠른 진단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김 대표는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응급실을 찾으면 현장에서 곧바로 심근경색인지 단순 흉통인지 판정한 뒤 진료할 수 있게 해준다”며 “초기 환자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제품”이라고 했다.
이 제품의 진단 원리는 혈관 속을 돌아다니는 심장 근육에서 떨어진 단백질을 찾는 것이다. 그는 “심근경색이 오면 심장의 움직임이 멈추거나 느려지게 되는 데 이때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심장을 뛰게 하려고 자극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심장 근육에서 특정 단백질이 이탈하게 된다”고 했다. 이 단백질의 존재 여부로 질환을 진단한다는 것이다.
질환 진행 정도 수치로 표시
이 회사는 NT-프로BNP를 포함해 독감, 비타민D 등의 진단키트 10여종을 판매 중이다. 이 회사의 제품 경쟁력은 진단 정량화 기술이다. 이 회사가 독자 개발한 TRF 기술이다.
김 대표는 “기존 진단제품은 의사가 육안으로 질환 여부만을 판단하게 해주지만 우리 회사 제품은 질환이 어느정도 진행됐는지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며 “독감 등 질병의 감염 여부를 조기에 확인해 빠르게 환자를 진료할 수 있어 감염병 차단 등에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질병 진단 결과를 정량화해서 보여주는 TRF 형광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은 우리 밖에 없다”며 “진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가성비가 뛰어난 것도 강점으로 꼽는다. 이 회사의 진단장비에는 인공위성 스캔 기술이 적용됐다. 경쟁제품들은 진단키트의 부분부분을 순차적으로 읽는 방식을 쓰지만 이 회사 제품은 한꺼번에 스캔하는 방식이어서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혈액에 소량의 단백질이 포함돼 있어도 포착할 정도로 민감도가 뛰어나다. 그는 “기존 진단기기들은 개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필터를 쓰지만 우리가 확보한 스캔 기술인 TRF는 고가의 필터가 필요 없다”며 “낮은 진단비로 더 빠르게 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서 더 인정받는 기술력
프리시젼바이오는 지난해 4월부터 스위스 비영리단체인 파인드와 결핵진단 키트 개발을 시작했다. 파인드는 혈액 내 바이오마커로 결핵 여부를 곧바로 진단하는 키트를 만들어 저개발국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열흘 가까이 걸리는 결핵 확진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 결핵 확산을 최소화하고 진단비용도 낮추겠다는 의도에서다. 현재는 가래를 배양해서 진단하거나 DNA 분석으로 결핵 확진 판정을 내리다보니 결핵 대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파인드가 80여개 진단업체를 평가해 프리시젼바이오를 최종 파트너로 선택했다”며 “의료현장에서 15분 내에 결핵 의심 환자 여부를 가려낼 수 있게 되면 사회적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결핵 진단 키트 공급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맞춰 본격 성장 궤도에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결핵 진단키트는 2021년 상용화가 목표”라며 “연말께 임상 결과가 나오면 상용화 시점이 구체적으로 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파인드에 납품이 본격화되면 매출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일본과 스위스 진단업체 등과도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TRF 기술의 강점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진단키트를 공동 개발하자는 제안이 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프리시젼바이오는 동반진단 분야도 중장기적으로 진출을 검토 중이다. 제약사가 신약 등을 개발할 때부터 약효를 측정하고 해당 신약에 맞는 환자를 찾는데 진단 기술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어서다. TRF를 활용해 내성이 생긴 단백질이 어느정도인지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휴미라 엔브렐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는 장기간 사용하다보면 내성이 생기고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며 “이 분야의 진단키트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했다.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 추진
프리시젼바이오는 지난해 4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은 대부분 해외에서 발생했다. 김 대표는 “국내서는 아직 현장진단 수요가 많지 않아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며 “의료보험수가를 제대로 쳐주지 않아 수익을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도 국내 사업엔 걸림돌”이라고 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바이오마커 플랫폼이 되겠다는 게 목표다. 각종 질환을 진단하는 것부터 복용 중인 의약품의 약효 검사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진단업체, 제약사 등과 협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김 대표는 “환자와 의사의 편의성을 제고할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며 “검사 결과를 서버에 저장해두고 모바일을 통해 환자와 의사가 언제든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최대주주인 아이센스와의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아이센스는 현장진단 분야에 관심이 많아 아웃소싱이나 인수합병(M&A)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두 회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 중이다. 연내 기술성 평가를 거쳐 내년초 상장이 목표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을 주간사로 선정하고 상장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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