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비메모리도 세계 1위
삼성의 도전 돕겠다"
[ 김형호/박재원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정부가 미래형 자동차, 바이오헬스케어와 함께 ‘신성장 산업의 3대 기둥’으로 꼽은 핵심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기 화성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 반도체 비전선포식’에 참석해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도약대 삼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성공한다면 명실상부한 종합반도체 강국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이 국내에서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첨단을 넘어 미래를 담은 계획”이라며 민·관의 총력전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 비중이 3%에 불과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인력과 생산역량, 기술, 투자 여력이면 얼마든지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33조원을 투자해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부회장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성공을 위해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시스템 반도체 분야 R&D에 10년간 1조96억원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은 종합육성전략을 내놨다. 2030년 시장점유율 10%를 목표한 팹리스(제조 공장 없는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용펀드도 1000억원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추상적 성장전략이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처럼 구체적인 미래 먹거리 산업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얼마든지 가겠습니다.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짓는다면 언제든지 가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이처럼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오른쪽에는 이 부회장, 왼쪽에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나란히 걸었다. 시스템 반도체와 바이오산업을 문재인 정부가 육성할 핵심 산업으로 앞세우겠다는 의도된 연출이었다.
약속지킨 문 대통령, 삼성공장 찾아 선물보따리
문 대통령은 약 석 달 만인 30일 취임 후 처음으로 국내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해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시스템 반도체 비전선포식’을 통해서다. 최근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삼성전자를 향해 문 대통령은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에 상응하는 정부 차원의 ‘통 큰 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전통 제조업의 한계를 느낀 청와대는 시스템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산업을 핵심 산업으로 내걸었다. 민관이 힘을 합쳐 2030년 각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게 목표다. 문 대통령은 이날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 팹리스 분야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과감한 투자와 정부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50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 있다.
인텔에 도전장 낸 ‘메이드 인 코리아’
한국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는 불모지에 가깝다. ‘초격차’ 전략으로 삼성이 주도하고 있는 D램, 낸드플래시 등에 비해 시스템 반도체는 퀄컴, 소니, TSMC 등 글로벌 강자들이 시장을 휩쓸고 있다.
정부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강점을 살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해볼 만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결단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과 연계된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차이를 직접 설명하며 국가 차원의 비전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도록 공공시장을 적극 개방하겠다고 했다. 에너지·안전·교통 등의 대규모 공공사업과 연계한 관련 수요를 발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공공분야에서 2030년까지 2600만 개, 2400억원 이상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구체적인 지원책도 내놨다.
이재용 “확실한 1등 하겠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당부하신 대로 확실한 1등을 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인 믿음”이라고도 했다. 과감한 투자 배경에 대해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거대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엔진이자 우리 미래를 열어가는 데 꼭 필요한 동력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를 마친 뒤 삼성전자 EUV(극자외선)동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공정 진행 상황과 향후 투자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장 직원들을 격려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착공한 EUV동의 공사를 내년 2월까지 완료하고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 기조발표를 맡은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이 약세지만 기술적 잠재력도 갖추고 있다”며 “현명한 투자가 이뤄지면 세계의 번영을 끌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호/박재원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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