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150년 역사' 도이체방크의 쇠락

입력 2019-05-01 17:28  

심은지 국제부 기자 summit@hankyung.com


[ 심은지 기자 ] 독일 1, 2위 은행인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이 최근 최종 무산됐다. 이번 합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쇠락한 도이체방크가 마지막으로 도약할 기회로 여겨졌기에 아쉬운 탄성이 쏟아지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1870년 설립된 도이체방크는 2008년 총자산 기준 세계 2위의 은행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 속에 수익성이 계속 악화됐다. 결국 몸집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2012년 자산 규모 3위, 2016년 7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작년에는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익도 참담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1분기(1~3월) 순이익은 2억유로(2억2200만달러·약 2600억원)로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미국 최대 은행 JP모간 순익(1분기 91억8000만달러)의 40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 신한은행 1분기 순익(6181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독일 증시에서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이 장부 가격의 4분의 1 수준에 머무는 까닭이다. 여기에 ‘덴마크 단스케방크의 돈세탁 의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설’ 등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까지 받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쇠락은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기업일지라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미국 대형 은행들은 상업은행(CB)의 한계에서 벗어나 투자은행(IB)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도이체방크는 그러지 못했다. 관료주의적 문화에 젖어 핵심적인 의사 결정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모바일 등 정보기술(IT)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합병 실패로 도이체방크와 미국 은행들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IB 전문가인 데빈 라이언 JMP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인수합병(M&A) 등 증권사 업무에까지 과감히 뛰어들면서 생존력을 키웠지만 유럽 은행들은 전과 같은 영업방식을 고수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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