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한·일관계 발전 관심을" 축전
[ 김동욱/임락근 기자 ]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59)이 1일 즉위하면서 일본에서 ‘레이와(令和) 시대’가 개막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일본)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즉위 소감을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전 10시30분 도쿄 고쿄(皇居·왕궁)에서 즉위식을 했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각 부처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헌법을 따르고 일본 국가 및 국민 통합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했다.
1960년생으로 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전후 세대’ 나루히토 일왕은 전날 퇴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평화주의’ 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나루히토 일왕에게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며 “나루히토 일왕이 한·일 관계의 우호적 발전을 위해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바란다”는 축전을 보냈다.
역사 전공한 '戰後세대 일왕'…日에 '평화의 새 길' 열어갈까
지난달 30일 밤 도쿄 고쿄(皇居·왕궁) 앞과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오사카 도톤보리 등 일본 전역 주요 명소는 ‘레이와(令和) 시대’ 개막을 카운트다운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가득찼다. 새 시대 개막을 기념하기 위해 1일 새벽에 결혼식을 치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본 주요 TV들은 이날 ‘레이와둥이’ 탄생 소식을 경쟁적으로 전했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즉위하면서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부푼 꿈에 빠져 있다. ‘덕담이 오갈 수밖에 없는’ 일본의 경축일을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후 세대’ 일왕 즉위
1일 오전 10시30분 왕궁 접견실인 마쓰노마에서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이 열렸다. 일본 남성 왕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왕실을 상징하는 삼종신기(三種神器: 칼, 거울, 곡옥)를 물려받는 의식이 치러졌다.
오전 11시10분 마사코 왕비 등과 함께 유럽식 왕실 복장을 한 채 즉위 후 첫 조현의식에 참석한 나루히토 일왕은 “헌법과 왕실전범 특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왕위를 계승했다”며 “짊어진 중책을 생각하면 숙연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현의식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266명의 국민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날 즉위식을 마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 첫 일왕이 탄생했다. 1960년생인 나루히토 일왕은 일왕 중 처음으로 신하가 아니라 부모의 보육을 받았다. 기존 일본 왕족이 주로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한 것에 비해 나루히토는 가쿠슈인대에서 박사 과정까지 역사학을 공부했다. 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최초의 해외유학파 일왕이기도 하다.
나루히토 일왕은 하버드대 출신 외교관이던 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와 1993년 결혼했다. 마사코 왕비가 왕세자빈 시절 아들이 없는 것 등에 따른 부담으로 ‘적응 장애’를 겪자 2004년 “마사코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폭탄 발언으로 엄호해 화제가 됐다.
어떤 길 걸어갈지 관심
나루히토 일왕은 젊은 시절부터 ‘물’과 ‘길’에 관심이 많았다. 옥스퍼드대 유학시절 연구 분야도 ‘템스강 수운의 역사’였다. 그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을 길의 매력으로 꼽기도 했다. 레이와 시대가 열리면서 나루히토 일왕이 일본 사회에 어떤 길을 제시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적으로 일왕의 정치적 참여가 금지된 만큼 ‘상징적 존재’라는 한계를 존중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조심스레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본에선 나루히토 일왕이 아버지인 아키히토 전 일왕의 뒤를 이어 평화를 강조하는 ‘상징 일왕’ 모델을 강화해 나갈 것이란 시각이 많다. 나루히토 일왕은 2015년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려고 하는 오늘날 겸허히 과거를 되돌아보고,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반전(反戰)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바 있다.
2016년에는 평화를 11차례나 강조했다. “현재의 일본은 전후 헌법을 기초로 쌓아올려졌고 (이에 따라)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한·일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새 일왕 즉위를 한·일 관계의 경색을 풀고,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10월 22일 일왕의 공식 즉위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일본에 한국 정부의 대(對)일 관계 개선 의지와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 교수는 “10월 즉위식에 앞서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문 대통령이 대규모 경제사절단과 함께 방일해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새 일왕의 즉위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한국이 여러 경로로 일왕 즉위를 축하해 일본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린 뒤 꼬인 경제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임락근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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