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도네넴띤, ㅇㅈ? ㅇㅇㅈ, 밤감샴…요즘애들 작명법에 꽂힌 기업들

입력 2019-05-02 17:58  

[ 안효주 기자 ] 팔도비빔면은 1984년 나왔다. 출시 35년이 됐지만 여전히 팔도의 간판제품이다. 역사가 오래돼 ‘올드’한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제품을 새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네티즌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해 유행시키고, 비빔면 액상소스만 판매해달라고 요구해 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고민은 있었다. 미래 소비자인 10~20대를 어떻게 끌어들일지가 과제였다. 팔도는 ‘그들의 언어’에서 답을 찾았다. 팔도가 지난 3월 이름을 바꿔 내놓은 ‘괄도네넴띤’ 한정판은 출시 한 달 만에 500만 개가 모두 팔렸다.

유통·식품업체들이 젊은 세대의 신조어를 활용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야민정음’ ‘급식체’ ‘초성체’를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맛과 재미를 결합해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제품명이 된 야민정음·급식체·초성체

팔도의 ‘괄도네넴띤’은 야민정음을 적용한 대표적 사례다. 야민정음이란 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양이 비슷한 것끼리 바꿔 단어를 표기하는 인터넷 언어다. 지난해 8월 팔도 사내 회의시간에 누군가 “팔도 비빔면이 인터넷에선 ‘괄도네넴띤’이라 불린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팔도는 이를 활용해 제품명을 지었다. 자세히 보면 ‘팔도’와 ‘괄도’, ‘비빔면’과 ‘네넴띤’의 글자 모양이 서로 닮았다. 이 제품은 팔도가 지금까지 선보인 한정판 라면 중 가장 짧은 기간에 다 팔렸다. 괄도네넴띤의 인기는 원조 제품인 비빔면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비빔면 월간 판매량이 여름 성수기 수준인 1000만 개를 훌쩍 넘어섰다.

편의점업계는 초성을 활용한 인터넷 언어를 제품명에 사용하고 있다. CU는 조각 초코 케이크를 ‘ㅇㄱㄹㅇ ㅂㅂㅂㄱ’이란 이름으로 팔았다. ‘이거레알 반박불가’라는 의미다.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뜻이다. 10대들이 사용하는 ‘급식체(학교 급식을 먹는 중·고등학생들의 언어)’를 활용했다. 2017년 말 선보인 이 제품은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개 이상 팔렸다. 작년 말엔 쿠키&크림 맛 조각케이크 ‘ㅇㅈ ㅇㅇㅈ’도 내놨다. ‘인정 어인정’이란 뜻으로,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하면서 거절을 막기 위해 혼자 묻고 답하는 언어 유희다. 세븐일레븐도 ‘웃기는젤리ㅋㅋㅎㅎ’이라는 상품을 팔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출시한 샴푸에 ‘밤감샴(밤에 감아도 좋은 샴푸)’이라는 별명을 붙여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주요 소비층인 10~20대의 감성에 맞춰 초성으로 상품 이름을 짓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그들의 언어를 활용해 눈길을 끄는 건 이젠 필수”라고 설명했다.

한글↔영어 뒤집고 더 짧게 줄여라

쓱닷컴은 이를 브랜드로 만들어버린 사례다. 2016년 처음 등장한 ‘쓱’ 광고는 ‘SSG’의 발음을 활용해 ‘쓱 왔다’는 방식으로 온라인 배송을 강조했다. 쓱 광고가 좋은 반응을 얻자 모든 자음을 ‘ㅅㅅㄱ’ 순으로 바꿔 끼워넣어 ‘신선한데’는 ‘식석갓세’로, ‘믿음이 확 가네’는 ‘싯슷기 솩 가세’로 표현한 광고도 내놨다. 롯데면세점은 회사의 영문명 첫 글자 ‘LDF’를 딴 ‘냠’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알파벳을 재배치하면 한글 ‘냠’으로 보인다는 점을 활용했다. LF는 브랜드 영문 이름이 한글 ‘냐’처럼 보인다는 데 착안해 ‘냐’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줄임말도 중요한 키워드다. 10~20대들은 메신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주 사용하는 만큼 실제 언어생활에서도 문장이나 구절을 최대한 짧게 줄여쓰는 경우가 많다. 이슬기 제일기획 제작팀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SNS 채팅 등을 통해 초성체와 줄임말로 소통하는 데 익숙하다”며 “기업들은 신조어를 활용해 오래된 브랜드 이미지를 신선하게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신조어 풀이

① 뇌(腦)와 오피셜(official·공식 입장)의 합성어.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사실이나 검증된 것인 양 말하는 행위.

② ‘존맛탱구리’라는 의미로 ‘매우 맛있다’는 뜻. 자매어로 ‘JMT(존맛탱)’이 있다.

③ ‘오~ 놀 줄 아는 놈인가?’의 준말.

④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한다’는 의미. 소개팅이나 미팅을 통한 만남은 사양. 자매어로 ‘인만추(인위적인 만남을 추구)’ ‘아만추(아무나의 만남을 추구)’도 있다.

⑤ ‘공부와 삶의 균형(study and life balance)’이라는 의미다.

⑥ ‘고양이’라는 의미다. 강아지를 ‘멈뭄미’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⑦ 심남·짝남은 ‘내가 짝사랑하는 남자’, 심녀·짝녀는 ‘내가 짝사랑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⑧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다. ‘겜알못(게임 알지도 못하는 사람)’ ‘영알못(영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같이 쓰인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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