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스티븐 그레이서와 레이먼드 바우어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루에 마주치는 광고는 15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사람들이 지각하는 광고는 평균 76개이며 내용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12개 정도라고 한다. 하루에 마주친 광고의 0.8%만 기억하는 셈이다.
광고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광고를 각인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은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범주화’해 사고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외부 정보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 비슷한 정보를 하나로 묶어 이해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런 범주화 과정에서는 이분법을 선호하는데, 특정 대상을 서너 가지 이상으로 분류하기보다 두 가지로 분류해 판단하는 것이다. 흑과 백처럼 일반인용과 전문가용, 수입품과 국산품, 좋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명품과 일반제품으로 구분하는 게 그런 경우다.
성공한 광고를 떠올려 보면 이런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맥주시장은 국산과 수입 맥주로 범주화돼 있었는데 신규 진출을 모색하던 한 회사가 1993년 첫 제품을 내놓으며 ‘150m 지하 천연 암반수’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기존 맥주와는 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은 가려 마시면서 왜 맥주는 가려 마시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을 던지면서 맥주시장을 단번에 ‘물이 깨끗한 맥주’와 ‘그렇지 않은 맥주’로 범주화한 것이다. 이 광고는 소비자로 하여금 맥주를 만드는 물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고 새 제품이 손쉽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게 도왔다.
한 유명 PC업체는 박찬호 선수를 모델로 쓴 TV 광고의 ‘체인지업’ 슬로건을 통해 다른 업체와 달리 일정 기간 후 중앙처리장치(CPU)를 업그레이드해주는 유일한 PC라는 사실을 내세워 높은 판매량을 달성할 수 있었다. 최근 광고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당일배송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자동차가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바꿔주는 자동차와 그렇지 않은 자동차’ 광고가 여기에 해당한다.
범주화된 사고는 무언가를 판단하고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이다. 하지만 범주화를 위한 기준과 개념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편견이나 선입견을 심어주기도 한다.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이런 사실부터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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