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을 위한 기다림…블루보틀, 커피 업계 '제3의 물결' 될까?

입력 2019-05-03 11:36  

블루보틀 5월 3일 성동구 성수동에 국내 1호점 오픈
기존 프랜차이즈와 가장 큰 차별성은 '느림의 미학'
기대 큰 소비자들 만족시키기 못하면 외면받을 것이란 의견도




'느린 커피' 블루보틀이 국내에 첫 매장을 오픈했다.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커피광'인 제임스 프리먼이 2002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블루보틀 터를 잡고 지역 명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지 꼭 17년 만이다.

블루보틀은 미국 커피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제임스 프리먼은 상업적인 커피 사업과 값싼 원두에 실망해 신선하고 수준 높은 커피를 직접 만들겠다며 친구의 차고에서 블루보틀을 시작했다.

기존 커피 프랜차이즈와 블루보틀의 가장 큰 차별성은 '속도'다. 프랜차이즈는 커피를 빨리 제조해 빨리 소비한다. 그래야 매출이 조금이라도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

바쁜 직장인들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낯설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블루보틀은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때문에 커피 제조 시간도 길게는 한 잔당 15분 이상 걸린다.

실제로 매장 안에서 커피를 제조하는 바리스타들은 밀려드는 손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유롭게 커피를 만들었다. 손님들 역시 짜증을 내거나 재촉하는 모습 없이 기다림을 즐겼다.



블루보틀의 한국 진출은 단순히 하나의 커피 브랜드 진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제 3의 물결'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블루보틀에 의미를 부여했다. 믹스커피가 개발되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적 제약이 사라졌고 스타벅스가 1999년 7월 이대점 1호 매장을 오픈하면서 고급 원두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블루보틀이 속도를 늦추면서 커피와 함께 자신에게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국내 토종 프랜차이즈는 물론 해외 유명 커피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도전했지만 믹스커피와 스타벅스의 아성을 넘은 브랜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블루보틀의 입성만으로도 국내 커피 시장을 환기시키는 것은 물론 세계 커피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업계의 대응도 빨라졌다. 스타벅스는 싱글 오리진 스페셜티 커피(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 평가에서 인증을 받은 최고급 생두로 만든 커피) '리저브'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저브 바' 매장을 점진적으로 확대했다. 이 매장은 2016년 5개점에서 2017년 15개점, 지난해 44개점, 올해 1월 46개점으로 늘었다.

이 매장은 회전율보다 전문 바리스타와 추출 과정 등 커피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즐길 수 있도록 콘셉트를 잡고 있다. 실질적으로 블루보틀의 가장 큰 경쟁자다.

최근 홍콩계 사모펀드에 매각된 투썸플레이스는 신논현역점을 통해 에스프레소, 라떼, 콜드브루, 크림모카치노, 커피샘플러 등 여러 형태의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또한 서울 한남동에 에스프레소 특화 매장 'TSP737'을 열고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커피 큐레이션(Curation, 맞춤형 추천 서비스) 경험을 전달하고 유러피안 수준 높은 커피 문화 정착에 앞장서고 있다.

할리스커피는 2016년 '할리스커피클럽'이라는 스페셜티 커피전문점 3개점을 잇따라 열었고 2017년 5개점, 2018년 8개점, 지난 2월 기준 10개점으로 확대했다. 드롭탑도 지난 3월부터 에스프레소가 들어가는 전 메뉴에 사용하는 원두를 스페셜티 커피로 전면 개편했다.

엔제리너스는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어 최근 인천점에도 프리미엄 스페셜티 매장을 열면서 11개까지 고급 매장을 늘렸다. SPC그룹의 커피앳웍스는 서울 동부이촌점에서 일대일 개인 맞춤형 원두 로스팅 서비스를 시작했다. 맥심을 판매하는 동서식품도 지난해 서울 한남동에 고급 원두로 만든 커피를 경험할 수 있는 지하 4층, 지상 4층짜리 '맥심 플랜트'를 오픈했다.



블루보틀 인근에 위치한 카페를 운영 중인 한 바리스타는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을 하다가 빨리 만드는 것에만 집중해 나만의 커피를 만들고 싶어 카페를 열었다"며 "기존의 프랜차이즈 커피는 커피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공간 제공만 했을 뿐"이라고 강도 높에 비판했다.

그러면서 "블루보틀이 성수동에 들어온다고 해서 경쟁심보다는 오히려 반가운 동지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이라며 "나도 블루보틀에 가서 커피와 문화에 대해 연구를 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블루보틀에 열광하는 현상에 대해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즘에는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아주 느린 커피가 차별화를 요구하는 트렌드에 힘입어 초기에 충분히 이슈를 끌 수 있을 것"이라며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족은 기다리는 시간마저 하나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처럼 '빨리빨리' 문화가 짙에 깔린 곳에서 '느림'을 강조하는 블루보틀이 커피업계에서 '제3의물결'까지 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업계 관계자는 "블루보틀이 만들어내는 커피의 품질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기존 커피업체들의 커피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관심은 거품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라는 의견도 내비쳤다.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상황에서 오픈한 블루보틀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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