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섹터가 제공하기보단 민간 스타트업에 기회 줘야"
"모빌리티 게돈의 시대… 렌터카 업체 '다크호스' 가능성"
마이크로 모빌리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인 중국의 공유자전거 업체 오포는 서울에서 시범사업을 하다가 접었다. 투자가 끊겨 해외 시장에서 철수한 것이지만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도 오포가 통하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공공성을 강조한 만큼 따릉이는 저렴하다. 1000원만 내면 24시간 동안 쓸 수 있고(이하 1시간권 기준) 정기권을 끊으면 한 달에 5000원, 1년에 3만원이면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시민 정책만족도 93.9%로 서울시 공유사업 중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로 사업을 확장한 오포에 밀리지 않았을 정도다.
문제는 적자다. 2015년 10월 선보인 따릉이는 첫해 3억7000만원, 2016년 24억원, 2017년 35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불어났다. 이 기간 투입된 시 재정은 약 320억원, 운영 수입은 42억원이었다. 운영 적자를 세금으로 막는 구조다. 서비스 확대를 위해 자전거와 스테이션 보급을 늘릴수록 적자 폭은 커진다. 여기까지는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서울시도 공공서비스의 특성상 수익성보다 시민 편의와 도시환경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서다.
“더 큰 문제는 모빌리티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비즈니스를 펼칠 ‘기회’를 공공영역에서 적자까지 보면서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혁신전략연구소 정책위원(사진)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꼬집었다. “스타트업이 아닌 공공섹터가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과연 적합할까요?”
차 위원은 손꼽히는 모빌리티 전문가다. ‘자동차 인간공학’을 전공하며 석사과정에선 내비게이션을, 박사과정에선 자동주행시스템을 주로 연구했다. 현대모비스에서 6년간 근무한 이력도 있다. 최근 모빌리티 혁명을 다룬 책 〈이동의 미래〉를 펴내 주목받았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우버가 점프바이크, 리프트가 모티베이트를 인수한 이유는 (중략) 멀티모달 모빌리티 서비스로 진화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퍼스트-라스트 마일을 위한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을 공공섹터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면서 모빌리티 기업이 진입할 여지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중략) 더 이상 정부가 시장 플레이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시는 나아가 따릉이와 지하철·버스·택시 등 대중교통을 연결하는 이동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일종의 통합 모빌리티 원탭(one-tap) 시스템 구축이다. 이러한 방안에 대해서도 차 위원은 “민간, 특히 스타트업들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핀란드의 휨(Whim)을 사례로 들었다. 휨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모든 모빌리티 경우의 수를 감안해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게 만든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이용하는 연속적(seamless) 모빌리티 루트를 짜서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우버 등 대부분 모빌리티 기업이 유사한 서비스 도입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민간 스타트업이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내줘야 한다는 뜻이다. “자국을 테스트베드로 서비스를 검증해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는 게 모빌리티 산업 특성”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대신 공공영역은 데이터 제공, 연결 등 서비스 밑단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꼭 서울시만 겨냥한 비판은 아니다. 모빌리티 산업을 큰 그림으로 놓고 총체적으로 접근하자는 게 핵심. 자율주행차, 카풀, 공유자전거를 일일이 구분해 담당 공무원 한 명씩 배치하는 식으로는 어렵다고 봤다.
실제 모빌리티 산업은 각종 기술과 서비스, 규제 및 법령이 뒤섞여 있다. 우선 자율주행차 기술부터 떠오르지만 쏘카 같은 카셰어링(차량공유), 우버로 대표되는 라이드셰어링(승차공유), 공유자전거·전기자전거·전동킥보드 등이 포함된 마이크로 모빌리티, 최근 사회적 논란을 빚은 카카오 카풀, 승합차를 활용해 법적 분쟁을 피해간 타다 등이 모두 모빌리티 플레이어에 속한다.
해외에서는 100년 라이벌 BMW와 다임러가 손잡고 모빌리티 대응에 나섰다. 전통적 완성차 업체뿐만이 아니다. 웨이모로 자율주행차 분야 선두 입지를 굳힌 구글 같은 테크 자이언트도 모빌리티 플레이어가 됐다. 차량 기술과 서비스에 직접 손대지 않은 소프트뱅크 역시 우버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한 마디로 ‘모빌리티 게돈(Mobility-Geddon)’의 시대”라고 차 위원은 요약했다.
“왜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승차공유, 마이크로 모빌리티 쪽까지 들여다보겠어요. 자율주행 기술도 중요한데 그게 제대로 구현되려면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거든요. 제조업 마인드만으로는 안 되죠. 결국 모빌리티에서 쌓인 밑단의 데이터가 결합돼야 하는 겁니다.”
그는 모빌리티 산업 관련 규제를 다루는 각종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왜 카풀이나 라이드셰어링이 혁신이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기술 차원에서 별다른 혁신성이 안 보인다는 뉘앙스라고. 그럴 때면 “세상에 처음 출현한 대단한 기술만 혁신은 아니다. 사용자와 시장이 판단해 하이테크뿐 아니라 로테크와 서비스도 혁신이 될 수 있다”고 답하곤 한다.
“모빌리티 플랫폼 단에서의 관건은 다름 아닌 서비스 혁신이에요. 타다가 뜬 이유가 뭡니까? 택시에 대한 대표적 불만이 서비스, 청결 문제였잖아요. 이런 부분을 충족하면서 치고 나온 거죠. 해외에선 우버가 그랬고요. 유럽에서 택시들이 파업하면서 도리어 우버 회원이 크게 늘어난 전례가 있습니다.”
완성차 업체들 또한 기술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례로 현대·기아차도 그간 강조해온 제조 품질 못지않게 서비스 마인드 접목이 중요하다고 했다. 차 위원은 “BMW까지 바뀌고 있다. 해외 완성차 업체들이 공유서비스에 공 들이는 것은 데이터 확보도 있지만 판로 개척과 함께 차량·승차공유 서비스의 특징과 경험을 체득하려는 시도”라고 부연했다.
대기업 계열 렌터카 업체가 모빌리티 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도 눈여겨볼 필요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단 차량을 보유했고 그동안 쌓은 렌터카 노하우와 데이터, 품질 관리가 되는 강점을 지닌다”면서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주유소 망을 훌륭한 충전·거치 장소로 활용하고 차량 유지·보수 설비도 결합해 전·후방 통합 서비스를 제공할 만한 잠재력이 있다. 자본력까지 갖췄으니 국내 모빌리티 시장 판도를 바꾸는 의외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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