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여러발의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월말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은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 북한 ‘발사체’의 정체와 의도, 미국과 북한의 행보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수 있다. 북한 도발을 둘러싼 궁금증을 살펴봤다.
①미사일이냐, 아니냐
첫째 의문은 북한 발사체의 정체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4일 북한의 발사체가 포착된 후 처음엔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40여분만에 ‘단거리 발사체’로 수정했다. 발사체는 동해상에서 약 70~200㎞ 가량을 비행했다고 밝혔다.(다음날 국방부는 사거리를 70~240㎞로 바꿨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고도가 높지 않고 거리도 많이 나가지 않아 미사일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뒤인 5일 북한 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참관 하에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가 동원된 화력 타격 훈련이 실시됐다고 보도했다. ‘전술유도무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는 방사포와 함께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는 장면(사진1)이 담겼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물체가 지난해 2월 북한군 창설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전술유도무기’와 거의 같고,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지대지 탄도 미사일을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60∼70㎞에서부터 500㎞까지 조절할 수 있고, 요격이 까다로와 위협적인 무기로 평가된다. 사거리 조정에 따라 한반도 전역이 타격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북한이 언급한 ‘전술유도무기’가 ‘북한판 이스칸데르’가 맞다면 2017년 11월말 화성15(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이후 1년5개월만에 미사일 실험을 재개한 것이며 유엔 결의 위반일 가능성이 있다. 유엔 안전보상이사회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국 국방부는 5일 ‘북한의 단거리발사체 발사 관련 입장’을 통해 “한·미 정보당국은 어제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발사체와 관련해 세부 탄종과 제원을 공동으로 정밀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②협상용이냐 ‘새로운 길’이냐.
둘째는 북한의 의도다. 북핵 협상은 지난 2월말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빅딜(일괄타결식 북핵 폐기)’을, 북한은 ‘스몰딜(단계적 비핵화)’을 내세우며 서로 공을 떠넘기고 있다. 김정은이 올해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일단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되,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협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이번 도발도 이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단거리 무기 발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나치게 도발하지 않으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북한의 도발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노이 회담 직후엔 회담 결렬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며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을 비난하다 최근엔 무력 도발에 나섰다. 지난달 17일엔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실험을 했다. 당시 한·미는 이 무기가 탄도 미사일이 아닌 사거리 20여㎞의 스파이크급 유도미사일이나 신형 지대지 정밀유도무기라는 쪽에 무게를 뒀다. 미국은 이후 4월18, 19, 29일 수도권 상공에서 이례적으로 RC-135W(리벳 조인트) 정찰기를 띄워 대북 감시에 나섰다.
북한은 이번에 ‘단거리 발사체’를 동해상으로 쏘아올리면서 도발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하노이 이후 북한이 미국하고 버티기에 들어간 만큼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라며 “유엔 안보리 위반까지는 안 가면서 미국이 ‘상황 더 끌다간 나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③미국의 대응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맞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미국 시간으로 4일 밤 트위터를 통해 “아주 흥미로운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지만 김정은은 북한의 대단한 경제 잠재력을 완전히 알고 있고 이를 방해하거나 중단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딜(거래)은 이뤄질 것”이라고 썼다.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한지 약 13시간만이다. 김정은과 ‘관계’를 강조하며 비핵화가 이뤄질 경우 북한에 펼쳐질 밝은 미래를 제시하는 등 북한과 협상의 문을 계속 열어두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에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보고를 받고 화가 났다는 미 언론 보도도 있었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는 4일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를 속인 것처럼 화가 났다”며 “고위 참모진은 문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에는 어떤 트윗도 올리지 말라고 강력히 권했다”고 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에 북한의 발사체에 대해 보고받고 화를 냈다가, 나중에 어떤 상황 변화에 따라 화를 누그러뜨렸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에서 강경대응을 자제한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우선 북한의 발사체가 ‘레드라인(탄도 미사일 발사)’를 넘었다고 단정짓기 이르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백악관은 “북한의 활동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며 “필요에 따라 감시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짤막한 성명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단을 북핵 협상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강조해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런 성과가 뒤집히면 ‘이전 행정부와 달라진게 없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런만큼 북한이 추가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강경 대응을 자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까지나 사태를 계속 지켜보는 쪽을 택할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이 한창이던 2017년엔 ‘화염과 분노’를 거론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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