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는 지금 '골디락스'
"경제지표, 이상적인 상태"
증시도 연일 최고치 행진
[ 김현석 기자 ] 미국 경제가 세계에 연일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내놓고 있다. 높은 성장률과 낮은 물가에 더해 이번엔 50년 만의 최저 실업률 소식을 전했다. 미국 경제가 지나치게 과열되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은 이상적 상태를 의미하는 ‘골디락스’를 구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 노동부는 지난달 실업률이 전달보다 0.2%포인트 낮아진 3.6%로 집계됐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1969년 12월(3.5%) 후 약 5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월가 전망치 평균(3.8%)도 크게 밑돌았다.
미국의 실업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0% 근처까지 치솟았다가 지속적으로 하락, 지난해 9~11월엔 3.7%를 기록했다. 올 1월 4.0%까지 올랐다가 이번에 3.6%로 하락했다. 스콧 래드너 호라이즌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고용지표는 미국 경제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는 성장률, 물가, 노동생산성 등 각 부문에서 종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3.2%(전 분기 대비 연율 환산)로 4년 만의 최고치(1분기 기준)를 나타냈다. 물가상승률은 1.55%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신경 쓰는 2%를 밑돌고 있고, 노동생산성은 8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향상됐다. 이에 힘입어 나스닥지수는 3일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를 뜻하는 ‘골디락스’라는 말이 미국 경제에 본격 쓰인 것은 20년 전이었다. 1999년부터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붐과 중국산 저가 제품 확산에 힘입어 미국이 저물가, 저실업률에 높은 성장을 보이자 월가와 미국 언론들은 미국 경제가 골디락스 상태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이 용어가 최근 미국 경제에 다시 사용되고 있다. 양상은 20년 전과 비슷하다. 각종 경제지표가 너무나 좋게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0년 만에 최저 실업률이 나온 직후인 4일(현지시간) “우리(미국)는 세계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트위터에 썼다. 손성원 미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눈부시다’는 말이 지금 미국 경제를 설명하는 유일한 단어”라며 “10년 된 경기 확장세가 홈런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장 물가 연타석 홈런
미국 경제를 재평가하게 한 첫 번째 타자는 성장률이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1분기 성장률(속보치)은 3.2%(전 분기 대비 연율 환산)였다. 1분기 기준 3%대 성장은 2015년 이후 4년 만이다. 2009년 시작된 경기 확장세가 오는 7월까지 이어지면 새로운 기록을 쓰게 된다. 종전 기록은 120개월 연속 경기 확장이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미 경제는 올해와 내년 3%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놨다.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0조달러에 이르는 미국 경제는 2% 넘게 성장하기도 쉽지 않다. 잠재성장률도 1.9%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도 3% 이상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에 힘입었다. 카미네 디 시비오 언스트앤영 차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9일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법인세 감세가 미국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세금을 아끼게 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니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두 번째 서프라이즈는 물가였다. 지난 3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1.6%에 그쳤다. 정확히는 1.55%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소비자물가를 중시하는 한국은행과 달리 근원 PCE를 중시한다. 이 수치가 2%를 넘으면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한다. 이 지표는 지난 12월 2%, 지난 1월 1.8%보다 더 낮아졌다.
고용 지표는 만루홈런
성장률과 물가 못지않게 중요한 잣대인 고용 지표는 50년 만에 최고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4월 실업률은 1969년 12월 이후 최저인 3.6%까지 낮아졌다. 통상 미국처럼 큰 경제는 실업률이 5% 안팎이면 완전고용 상태로 여겨진다. 4%대의 실업률도 대단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수치가 3.6%까지 떨어져 근 50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낮아진 것은 4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26만3000명 증가한 덕분이다. 이는 시장 예상(19만 명)을 훨씬 웃돈다. 비어 있는 채용공고가 750만 개에 달하고 기업들은 직원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 다만 노동시장 참가율은 62.8%로 지난 3월의 63%보다 0.2%포인트 낮아졌다. 취업자는 늘고 경제활동 인구가 줄면서 실업률이 예상보다 더 낮아진 셈이다.
떨어지는 실업률 속에 시간당 임금은 전년 동기보다 3.2% 올랐다. 예상(3.3% 증가)에 못 미쳤다. 이 때문에 물가 우려는 잦아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경제는 Fed가 조만간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정도로 충분히 따뜻한 ‘골디락스’ 상태에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경제에서 호재는 더 남아 있다. 우선 소비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4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전달 124.2에서 129.2로 높아졌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도 조만간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은 “기업들은 많은 자본을 갖고 있고 기업 신뢰와 소비자 신뢰도는 꽤 높다”며 “(경기 확장이)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골디락스
goldilocks.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영국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골디락스가 뜨거운 수프, 차가운 수프, 적당한 수프 중 적당한 수프를 먹었다고 해서 좋은 경제상태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1992년 데이비드 슐만 살로먼스미스바니 이코노미스트가 처음으로 경제에 이 말을 썼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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