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광화문까지 1시간 이상
"신생업체일수록 개발자 안 와"
[ 윤희은 기자 ]
중고 직거래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당근마켓은 지난해 경기 판교에서 서울 서초역 인근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직원들의 출퇴근 때문이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판교까지 출근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개발자들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서초동에서 사세를 확장한 당근마켓은 조만간 역삼동으로 다시 이전한다.
공유 오피스 부족도 판교의 약점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를 떠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늘고 있다. 임대료와 교통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송금 스타트업 소다크루도 지난해 판교에서 삼성역 인근의 공유오피스로 자리를 옮겼다. 소다크루 관계자는 “서울에 있으니 직원을 채용하거나 벤처캐피털(VC)과 미팅하는 게 더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판교를 떠난 스타트업 대다수는 해당 지역을 떠난 이유로 교통을 꼽았다. 신분당선 개통으로 강남역 간 이동시간이 20분으로 줄었지만 이동 지역이 여의도, 광화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차라도 갖고 나가면 넉넉잡아 1시간30분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교통 문제는 직원 채용에도 악영향을 준다. 거주 지역이 판교 인근이거나 강남권이라면 출퇴근에 별 무리가 없지만 강북만 하더라도 판교 출퇴근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임대료가 저렴한 것도 아니다. 판교 일대의 사무실 임대료는 3.3㎡(평)당 5만~6만원 수준으로 강남권과 비슷하다. 이미 가격이 역전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남에 공유오피스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임대료를 깎아주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판교에 공유오피스가 드물다는 점도 ‘판교 엑소더스’의 원인 중 하나다. 직원이 5명 미만인 스타트업이라면 통째로 사무실을 빌려야 하는 판교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판교에 본사를 둔 한 스타트업 대표는 “판교는 부동산 임대료가 비싸고 생활비도 많이 드는 지역”이라며 “유명하거나 규모가 큰 스타트업이라면 몰라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업체로선 판교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떨어진 지리와 비싼 물가 때문에 개발자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현상이 판교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제3의 대안으로 떠오른 성수동
판교가 주춤한 사이 스타트업의 관심사는 서울 성수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리적, 가격적 이점을 동시에 지녔다는 이유에서다.
성수동이 스타트업의 새 둥지로 자리잡기 시작한 건 2014년 무렵이다. 차량공유 스타트업 쏘카가 그해 11월 성수동에서 서울사무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다중채널네트워크(MCN)기업 트레져헌터, 가상현실(VR) 콘텐츠기업 리얼리티리플렉션이 성수동에 줄줄이 사무실을 냈다.
지난달 강남에서 성수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결제대행 스타트업 페이민트도 판교와 강남, 성수동을 두루 고민한 끝에 성수동을 선택했다. 페이민트 관계자는 “성수동은 판교, 강남보다 임대료가 저렴하면서도 서울 중심지에 있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성수동에는 분당선인 서울숲역, 2호선인 성수·뚝섬역 등 세 개의 지하철역이 있다. 지하철을 타면 강남권과 을지로 일대까지 20여 분이면 이동할 수 있다. 차량으로도 30분 남짓한 이동시간이 걸린다.
임대료는 일반 사무실 기준 평당 4만~5만원 수준으로 판교·강남보다 싸다. 지난해부터 카우앤독, 헤이그라운드, 스테이션니오 등 여러 공유오피스가 생겨나면서 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사무실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패스트파이브는 성수점·서울숲점 등 성수 지역에만 두 개의 공유오피스를 개점했다.
김성민 패스트파이브 서울숲점 매니저는 “예전에는 스타트업 사무실은 무조건 강남·판교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많이 줄었다”며 “지난 1일 개점 후 절반 이상의 공간이 곧바로 채워졌을 정도로 스타트업의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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