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운다"

입력 2019-05-0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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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논설위원


[ 백광엽 기자 ] 1969년 삼성전자의 출범이 가시화됐다. 전자공업협회가 “TV 라디오 스피커 콘덴서 등은 중소기업 업종”이라며 반대투쟁을 시작했다. ‘나쁜 재벌’ 삼성으로부터 전자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성명도 냈다. 삼성이 타협안으로 제안한 ‘85% 이상 수출’은 불가능한 목표이며, 혹 성공하더라도 내수로 풀리는 15%는 국내 산업을 공멸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업자들만이 아니었다. 정치권은 ‘일본과 손잡고 민족자본을 말살한다’며 시비 걸었고 해외서도 무모하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예순에 전자산업 출사표를 던진 이병철 회장은 굴하지 않았다. “국가산업 전반을 첨단으로 시급히 재편해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전자공업진흥 5개년 계획’을 가동하며 정부도 세제·금융을 지원했다.

모두가 아는 대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삼성전자는 한국 IT산업의 견인차가 됐고, 불가능하다던 ‘85% 수출’까지 현실로 만들었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의 86.1%는 해외에서 일어났다. 내수시장을 ‘레드오션’으로 만든 게 아니라 해외 ‘블루오션’을 개척해내며, 중소기업들과 함께 동반성장 신화를 쓰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은 거의 대부분 글로벌 수출기업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그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매출 2·3위인 현대자동차와 LG전자의 해외매출 비중은 각각 62.0%, 63.5%다. 매출 7위 SK하이닉스는 97.5%에 달한다.

척박한 한국 경제를 개척한 창업기업가들의 공통적인 슬로건이었던 사업보국(事業報國)을 떠올리게 된다. 정주영 현대 회장은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벗어나 해외로 나가 성공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운다’가 초지일관한 그의 목표였다. 한화 CJ 등도 ‘기업을 일으켜 나라에 은혜를 갚는다’는 기업가 정신을 언제나 앞세운다. 한진의 창업 이념 역시 ‘수송을 통해 국가에 기여한다’는 수송보국이다.

사업보국의 성과는 세금을 보면 명확해진다. 한국 법인세 비중(2016년 기준)은 명목 GDP 대비 3.6%로 OECD 평균(2.9%), G7 평균(2.6%)을 훨씬 웃돈다. 삼성전자의 경우 매출 86%가 외국에서 일어나지만 법인세 81%(2017년 기준)를 국내에 낸다. 지난해 법인세수는 70조9000억원으로 부가가치세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소비 부진에 따른 세수감소를 법인세가 상쇄한 셈이다.

이런 법인세 실적은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여전하다는 징표다.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다. 슘페터는 “기업가의 기능이 사멸하면 혁신은 관료화되고 만다”고 했다. 기업을 적폐로 모는 정치인은 물론이고, 눈앞의 이익만 재는 2세·3세 기업가들도 새겨야 할 경고다.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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