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원은 8일 국회에서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결선투표에서 125표 중 76표를 얻어 49표를 받은 ‘친문’ 김태년 의원을 이겼다. 앞선 1차 투표에서도 이 의원은 54표를 획득해 김 의원(37표), 노웅래 의원(34표)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이 의원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김 의원과 함께 결선투표를 치렀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84학번인 이 신임 원내대표는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 학생운동권 대표주자다. 당내 비주류이지만 친문 핵심 그룹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당내 의원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더좋은미래 등의 표도 대거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민생의 성과를 만들어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무력화하겠다”며 “보수보다 먼저 혁신해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더 넓은 리더십으로 강력한 단결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장외 투쟁에 나선 자유한국당과의 협상을 통해 국회 정상화를 이끌어야 하는 첫 과제를 맡게 됐다.
원내사령탑 오른 '86그룹' 이인영 "무조건 민생경제에 집중"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이끌 신임 원내대표로 이인영 의원(3선)을 8일 선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당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해찬 대표·김태년 의원 체제에 맞서 초·재선을 중심으로 한 부엉이 모임(친문 그룹)과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이 당의 신주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첫 과제는 국회 정상화
민주당 내에선 선거 전에 뒤늦게 뛰어든 이 원내대표의 예상 밖 ‘대승’에 놀라는 분위기다. 당초 원내대표 선거전은 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그만두고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김 의원의 절대 우세가 점쳐졌다. 김 의원은 이해찬 대표의 최측근이자 친문(친문재인) 핵심이다. 하지만 86그룹의 선두주자인 이 원내대표가 도전장을 던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자릿수 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초접전 양상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1차와 결선 투표 모두 이 원내대표가 압승을 거뒀다. 당 소속 의원 128명 가운데 3명을 제외한 125명이 참여한 1차 투표에선 54표를 얻은 이 의원이 37표에 그친 김 의원을 17표 차로 이겼다. 결선에선 격차가 27표로 더 벌어졌다.
이 원내대표는 민주당 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된다. 당내 86그룹과 김근태 전 상임고문 계열인 민주평화국민연대, 민주당 개혁 성향 의원 정책연구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지지를 받았다. 친문 그룹인 부엉이 모임의 지지가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평련 계열의 한 초선 의원은 “10명 이상의 지지 의원이 점심·저녁마다 의원들을 대신 만나며 이 의원을 도왔다”며 “오랜 운동권 생활과 재야 시절 확보한 ‘현찰(지지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다”고 말했다.
친문 일색 지도부에 반발 심리
민주당 내에선 친문 일색의 지도부 구성에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해찬 대표-김태년 원내대표-윤호중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특정 계파(친문)로 채워지는 것에 대한 견제 심리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 대표 체제로 지난달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사실상 패배한 것도 “현 체제로는 총선에서 힘들다”는 우려를 갖게 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친문이 원내대표가 되면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당·청 관계의 무게중심을 당으로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당·정·청 회의와 소통, 협력의 첫 출발은 상임위원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여당의 원내 수장으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국회를 정상화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시급한 경제 활성화 법안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견 발표에서 “자유한국당과 합의를 통해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야당과 공존협치의 정신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9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반발하고 있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극심한 대치를 겪은 뒤 민주당과 한국당 원내대표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원내대표는 꽉 막혀있는 정국을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보자는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한국당과 단시일 내 타협점을 찾긴 힘들 전망이다. 이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패스트트랙을 백지화하라는 한국당의 요구를 들어주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성 진보 벗어나 실용 노선으로
이 원내대표는 정견 발표에서 중소기업 육성 등 경제 정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원내대표에 당선되면 무조건 민생경제에 집중하겠다”고 운을 띄웠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당내 ‘경제통’인 김진표 의원과 최운열 의원의 아이디어를 적극 차용했다. 그는 “시중은행과 정부가 25조원의 자금을 마련해 25만 개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3000만원에서 1억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를 민주당의 1호 뉴딜 정책인 ‘민생 뉴딜’로 이름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강성 진보 이미지를 벗어나 실용주의 노선을 걷겠다고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필요하다면 야당에 일정 부분을 양보하고, 규제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면 야당과 ‘규제 빅딜’도 추진하겠다”며 “실용과 중도를 우리 것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우섭/김소현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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