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9년 만에 내한한 ‘피아노의 여제’에게 객석은 열광했다. 긴 은발에 어두운 색 상의와 긴 치마, 78세의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여전했다.
지난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9 아르헤리치 벳부 페스티벌 인 서울’은 ‘현역 피아니스트’로서 아르헤리치의 건재함을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공연은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의 하이든 현악 4중주 제5번 D장조 ‘종달새’ 연주로 차분하게 시작했다. 두 번째 곡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차례에서 현악기와 목관악기를 두 대의 피아노가 마주보게 배치한 뒤 아르헤리치가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등장하자 객석은 들뜨기 시작했다.
아르헤리치의 딸인 아니 뒤투아의 해설이 곁들여진 ‘동물의 사육제’는 마치 한 편의 음악극을 보는 듯했다. ‘거북이’에서는 잔잔한 선율에 연주자들이 모두 잠들어버리는 연출로 웃음을 자아냈다. 뒤투아는 해설뿐 아니라 비눗방울을 불거나 눈물을 훔치는 등 다양한 연극적인 설정을 가미했다. 더블베이스가 왈츠 리듬을 타는 ‘코끼리’와 첼로가 선율을 노래하는 ‘백조’는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수석 안동혁, 첼로 수석 심준호의 인상적인 연주 덕에 더 빛났다. 이 공연은 지난 3월 관람권 판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석 매진되는 바람에 지난달 합창석을 추가로 열었다. ‘동물의 사육제’를 연주할 땐 아르헤리치와 임동혁이 나란히 합창석을 마주보고 앉은 덕에 힘들게 합창석 표를 구한 관객들은 두 사람의 표정과 손가락의 움직임을 마음껏 감상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전설’ 아르헤리치와 ‘젊은 거장’ 임동혁이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지난해 6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에서도 두 사람은 ‘교향적 무곡’을 함께 연주했고, 최근 워너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임동혁의 앨범에도 함께 녹음한 이 곡을 담았다. 이번 공연에서도 두 사람의 호흡은 빈틈이 없었다. 임동혁의 섬세한 리드에 맞춰가던 아르헤리치는 느리게 시작해 빠르게 절정으로 치닫는 3악장에서 거침없는 타건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끝없는 박수에 두 사람은 앙코르 곡으로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악장을 선사했다. 화려한 종결부가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전설의 솔로 연주를 끝내 듣지 못하는 등 그의 매력을 더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프로그램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