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트윗 등 잇단 돌출 행동
잦은 스캔들에 리더십 위기
테슬라 직원들 이탈 가속화
[ 정연일 기자 ]
지난달 5일 미국 나스닥시장에서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 주가가 개장 직후 불과 2분 만에 11% 급락했다. 지난 1분기 테슬라가 고객에게 인도한 신규 차량 수가 시장 예측치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회사 대주주인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자산도 11억달러(약 1조289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미국 실리콘밸리 유니콘 가운데 대표 주자로 꼽혔던 테슬라가 최근 실적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 1분기에만 7억210만달러(약 8220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냈다. 매일 1000만달러(약 115억원)가량의 잉여현금흐름이 증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투자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주가는 올 들어 26%나 빠졌다. 테슬라의 7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은 투기 등급 수준인 8.51%까지 치솟았다.
테슬라가 직면한 여러 난제를 헤쳐나가기 위해 머스크 CEO는 여러 방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머스크 CEO가 최근 벌이고 있는 여러 기행이 테슬라 실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CEO 리스크’에 빠진 테슬라
테슬라가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진정한 ‘게임체인저’로 도약할지, 아니면 과거 닷컴붐 당시 여러 기업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지는 전적으로 머스크 CEO의 리더십에 달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머스크 CEO는 최근 테슬라의 부진한 실적과 더불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자진 상장폐지를 통해 테슬라를 비공개 회사로 만드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려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때문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도 벌여야 했다. 지난 2월에는 트위터에서 올해 차량 인도량 전망치를 부풀려 발표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디스(diss·조롱)’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테슬라가 추진 중인 위성 인터넷망 사업과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에 “제프 베이조스는 카피캣(copycat·모사꾼)”이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달 23일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만간 테슬라가 아닌 다른 기업이 만든 자동차를 모는 것은 말을 타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라 말해 논란이 됐다.
거세지는 ‘머스크 해임’ 요구
가중되는 CEO 리스크로 테슬라 직원들의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테슬라의 법무 책임자가 입사 2개월 만에 회사를 떠난다고 발표하는 등 최근 4년 새 회사를 떠난 고위직 임원이 4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만 글로벌 보안 담당 제프 존스 최고보안책임자(11월), 길버트 패신 제조 담당 부사장(10월), 리암 오코너 공급 담당 부사장·저스틴 맥니어 금융 담당 부사장·가브리엘 톨레다노·데이브 모튼 최고회계책임자(9월) 등 17명의 임원이 회사를 나갔다.
스캔들이 연달아 터지자 머스크의 리더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 테슬라 주식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 그린라이트캐피털의 데이비드 아인혼 대표는 “머스크 CEO는 위기를 실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존 커피 컬럼비아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 내 최고위직은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을 때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며 “머스크 CEO는 고위직 엘리트 인력들이 오래 버틸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에는 테슬라의 2대 주주인 영국 글로벌 투자회사 베일리기퍼드의 제임스 앤더슨 대표가 “일론 머스크가 반드시 테슬라의 CEO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앤더슨 대표는 “CEO가 아닌 다른 역할, 이를테면 아이디어 책임자 정도가 합당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신뢰 회복 위해 혁신에 집중
스캔들로 사태가 악화하자 머스크 CEO는 자신의 행보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달 SEC와의 법정 공방을 끝내면서 테슬라와 관련한 내용의 트윗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당시 업계에선 해당 합의가 ‘머스크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초 머스크가 CEO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나거나 추가 벌금을 물어야 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그런 조치까지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머스크 CEO는 테슬라의 구조조정과 혁신에 집중하면서 투자자와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당장 급한 불인 자금 확보를 위해 증자에 나서고 있다. 테슬라의 구체적인 미래 성장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사의 자율주행차 핵심 기술도 미리 공개했다.
지난 1월에는 전체 직원의 약 7%인 3000명을 줄였다. 이어 2월에는 테슬라의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고 온라인 판매 체제로의 전면 전환을 통해 수익성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상하이에 테슬라 최초의 해외공장인 ‘기가팩토리3’도 건설하고 있다. 테슬라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자동차 보험 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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