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상콘텐츠의 블랙홀…넷플릭스, 3년 새 325편 사들였다

입력 2019-05-09 18:04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의 거침없는 공세

콘텐츠 구입 열올린 넷플릭스
홀드백 조건 포기한 방송사



[ 김희경 기자 ] 글로벌 동영상스트리밍(OTT) 제공업체 넷플릭스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를 빨아들이고 있다. 국내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의 자체 제작을 늘리는 한편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은 물론 지상파로부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방영권을 사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콘텐츠가 2016년 국내에 진출할 당시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를 포함해 60여 편에 불과했으나 최근 325편으로 급증했다. 3년여간 다섯 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국내 방송사들은 넷플릭스의 강력한 공세에 긴장하면서도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최후의 보루였던 ‘홀드백(TV에 먼저 방영되고 나서 일정 기간을 두고 다른 플랫폼에서 공개)’ 조건마저 없애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로부터 거액의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지상파 드라마도 넷플릭스와 동시 방영

넷플릭스가 국내 진출 초기에 선보였던 한국 콘텐츠는 제작한 지 오래된 작품이거나 웹드라마에 그쳤다. 최근엔 주요 방송사의 대작을 동시에 또는 짧은 시차를 두고 제공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려면 한국 콘텐츠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곽동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제공하고 있는 주요 OTT 서비스에서 인기를 끄는 작품 중 대부분이 국내 방송사 콘텐츠”라며 “넷플릭스가 국내 방송사 콘텐츠 확보에 적극 나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tvN ‘미스터 션샤인’, JTBC의 ‘SKY 캐슬’을 TV와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다음달 1일 방영하는 tvN 대작 ‘아스달 연대기’도 넷플릭스에서 함께 공개한다. 지난 6일 첫 방영한 tvN ‘어비스’도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하고 있다.

지상파도 동시 방영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이전에는 케이블 채널과 종합편성채널과는 달리 넷플릭스의 시장 잠식을 우려해 홀드백을 두고 판매해 왔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를 종영한 지 3~4주 후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 장벽도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MBC는 오는 22일 첫 방영하는 드라마 ‘봄밤’을 넷플릭스에 홀드백 없이 공개한다. 넷플릭스는 홈페이지에서 “‘봄밤’을 한국 방영 한 시간 후에 아시아권과 대다수 영어권 지역에 공개하고, 나머지 국가에서는 6월 1일부터 한 주에 2회씩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9월 방영 예정인 SBS 드라마 ‘배가본드’도 동시 방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제작비 조달 창구로 매력적”

국내 방송사들이 드라마의 홀드백을 포기하고 넷플릭스에 문을 여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때문이다. 높아지는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다. 경쟁하는 플랫폼으로서 넷플릭스 자체는 위협적이지만 당장의 제작비를 조달하는 창구로선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4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미스터 션샤인’의 방영권을 약 280억원에 사들이면서 큰 화제가 됐다. 방송업계에선 4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아스달 연대기’도 비슷한 금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방송사들이 홀드백 조건을 없애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더 비싸게 판매할 수 있어서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작품을 만드는 제작사들도 작품 수준 향상과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해 방송사 측에 동시 방영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맞춰 지상파 3사는 최근 자체 운영하는 OTT인 ‘푹’과 SK텔레콤의 ‘옥수수’ 합병 관련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방송사별로 넷플릭스에 두 편 이내의 작품을 판매하는 것은 허용하겠다는 구두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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