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경제 위기는 묘책 따로 없어
고비용 개혁 없이 경제회생 불가
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지금쯤이면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분명 열어봤을 것이다. 전임자인 장하성 주중 대사가 주고 갔다는 빨강·파랑 주머니 말이다. “올해는 나아진다”고 장담한 게 무색하게 경기 부진에 ‘추경 카드’를 들이밀고, 1분기 ‘-0.3% 성장 쇼크’와 올해 1%대 성장 전망(노무라 1.8%)까지 목도한 마당이다. “어려울 때 열어보라”던 그 주머니에는 뭐가 들었을까.
2기 경제팀의 지난 6개월간 행보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보여준 것이라곤 ‘소득주도 성장(소주성)’을 방어하고, 유리한 통계지표를 내세우고, 경제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되뇐 것뿐이다. “무지개를 쫓았다”던 장하성의 주머니 메시지는 결국 ‘포장 잘 하고’ ‘끝까지 밀리지 말라’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2년 성과에 대한 경제팀 소회는 장하성류(類)의 ‘정신승리 화법’대로다. 김수현 실장은 “(경제정책의) 방향에 대해선 여전히 확고한 믿음이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2년간 성과로 국민소득 3만달러, 작년 수출 6000억달러, ‘30-50클럽’ 7개국 중 성장률 2위(2.7%), 사상 최대 외환보유액(4040억달러) 등을 늘어놨다.
문제가 있어도 보지 못한다면 ‘더닝-크루거 효과’가 의심된다. 능력이 부족할수록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라 더 자신만만한 법이다. 경제성과라고 내세운 것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축적된 역량이지 이 정부가 일군 것은 아니다.
현실은 경제팀의 자화자찬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수출·성장·투자의 동반 추락, 기업들의 의욕 상실, ‘세금 알바’로 감춘 일자리 참사, 생활물가 뜀박질 등 곳곳에 비상등이 켜졌다. 주가가 속절없이 내리고, 환율이 뛰는 것은 무기력 경제의 초기 증상이다.
지난 2년이 무지와 오판의 연속임을 평범한 국민도 다 안다. 최근 언론의 설문조사마다 일관되게 ‘가장 잘못한 분야’가 경제였고, ‘잘못했다’가 절반을 넘었다. 수출 중심이고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소주성’은 한마디로 ‘멍청한 이론’(아서 래퍼 교수)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탈원전 대안으로 내건 태양광도 사막 황무지 등 토지비용이 불필요한 나라에서나 통할 일이다. 노동생산성에 대한 고민 없이 덜컥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줄인 게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모든 혐의를 이 정부에 씌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집권 3년차에도 점점 악화하는 경제상황을 이전 정권이나 해외요인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현실을 냉철히 볼 줄 아는 정부라면 모를까 2년간 확인한 것은 그 어떤 비판에도 ‘나의 길을 가련다’는 ‘시내트라 증후군’이다.
씨줄 날줄로 얽힌 복잡계 경제를 이해할 지력(知力)도, 경험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는데 잘 돌아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경제에는 언제나 리스크도 있고 불확실성도 있다. 잘못될 확률을 아는 상태가 리스크라면, 모르는 상태는 불확실성이다. 경제운용은 불확실성을 없애고 리스크에 대비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시장과 기업을 못 믿는 이 정부는 리스크도 불확실성으로 만들 판이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는 위기 대처에 달리 묘책이 없다. 질병 예방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듯, 항시 철저한 구조개혁으로 고비용·저효율을 해소하는 길뿐이다. 과거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 네덜란드 등이 노동개혁으로 회생했음을 경제팀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좌파 정부가 잘할 수 있고, ‘반드시 가야 할 길’도 이런 길이다. 그런데도 노동귀족과 고용시장 경직성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10%의 노조만을 위한 게 친노동인가.
잘못 든 길을 계속 가면 더 헤맬 수밖에 없다. 19세기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무지는 순진이 아니라 죄악”이라고 했다. 국가경제를 운영하는 이들의 무지는 국민을 상대로 죄를 짓는 것이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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