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싫다면서 '오피스 콘텐츠' 챙겨보는 까닭

입력 2019-05-10 17:42  

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보편적인 회사 내 일상에 밀착
사표 못 쓰는 대다수 직장인에
공감 통해 '버틸 수 있는 힘' 줘



[ 김희경 기자 ] “그 생각은 맨날 하죠. 이 월급 받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내가 이러려고 회사 들어왔나.”

KBS 2TV에서 지난달 9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모큐멘터리(드라마+다큐멘터리) ‘회사 가기 싫어’에 나온 대사다. 오늘 하루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한 직장인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도 마음속에 품은 사표를 꺼내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퇴근 후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내일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누울 터다. 이 대사가 나왔던 회차의 제목처럼 체념 섞인 위로를 하며. ‘월급은 당신이 견뎌야 할 괴로움의 대가다.’

‘회사 가기 싫어’는 지난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뒤 호평을 받아 올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모큐멘터리란 형식 때문인지 좀 독특하다. 스토리 라인은 있지만 현실을 넘나드는 느낌이다. 신입부터 이사까지 각자 위치에서 하고 싶은 말을 카메라를 향해 적나라하게 한다. “자꾸 군기 잡으려 하는데 나 같으면 그 시간에 일이나 하겠어요.” “나 때는 상사가 얘기하면 넙죽 엎드렸거든요. 요즘 것들은 위아래 개념이 없어요.” 극 중간 현실 인물들도 툭툭 튀어나온다.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 심리학자 황상민 등이 등장해 세대별 직장인의 특징을 설명한다. ‘회사 안 최악의 자리는?’과 같은 실제 설문조사 결과도 나온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짐작할 만한 답이라 밝히자면 1위는 ‘상사 옆자리’다.

퇴근 후 일 생각은 하기도 싫지만 회사 밖에서 또 ‘회사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는 모순. 그럼에도 ‘오피스 콘텐츠’는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모큐멘터리란 새로운 형식을 차용하기도 하고, 웹드라마로도 제작된다. 웹드라마의 절반은 아이돌이 나오는 사랑 이야기, 나머지 절반은 회사 이야기란 얘기가 있을 정도다. 문득 회사 생활을 상징하는 단어로 부상한 비속어 ‘존버(오래 참고 버틴다는 뜻)’라는 말이 떠오른다. 퇴사와 관련한 책이 쏟아지는 등 퇴사 열풍이 분다고 하지만, 대다수 직장인은 그럴 여건도 되지 않고 용기도 쉽게 나지 않는다. 결국 잘 버티기 위해 이런 콘텐츠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국내 오피스 콘텐츠의 원조는 1987년부터 6년간 이어진 ‘TV 손자병법’이다. 직장 내 처세술 및 단합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당시엔 회사에서의 ‘성공’이 중요한 삶의 목표였으니까. 이후 나온 오피스물도 대부분 그랬다. 2014년 방영된 ‘미생’은 분위기를 확 바꿔놨다. 부당한 일과 갑을 관계에 초점을 맞춰 큰 인기를 얻었다. 2017년 ‘김과장’까지도 이런 흐름이 이어졌다.

여기서 더 확장된 것이 ‘회사 가기 싫어’ 같은 프로그램과 다수의 웹드라마다. 보편적인 직장인의 일상에 밀착한다. 이를 즐기는 대중의 심리는 뭘까. 통쾌함을 만끽하거나 반대로 상대를 잠깐이나마 이해하기도 하며 오늘의 고통을 씻어낸다. 예를 들어 ‘꼰대’에 반기를 드는 신입의 행동이 나오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한편 그런 꼰대의 이면이 나오면 작은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진짜 오피스에서 오피스 웹드라마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한화그룹이 선보인 ‘당신과 나의 거리, 63피트’다. 회사 홍보용인가 싶었는데 내용은 그렇지 않다. 차장과 신입의 영혼이 바뀌면서 서로가 겪는 고충을 이해하게 된다. 조회 수는 8만 뷰를 돌파했다.

드라마뿐 아니라 ‘급여체’도 인기다. 급여 받는 사람들이 쓰는 말투를 이른다. 온라인엔 급여체 테스트도 돌아다닌다. 한 문제를 소개한다. 팀장이 팀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지난번에 부탁한 자료 일정 확인 부탁합니다.” 여기서 ‘일정 확인 부탁한다’의 의미는 뭘까. ‘빨리 자료를 완성하라’는 독촉을 돌려 말한 것이다.

‘존버’라는 말은 급여체는 아니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생겨났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반등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의미다. 가상화폐 탓에 나온 비속어가 회사 생활을 나타내는 말이 됐다는 게 씁쓸하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응원하는 법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 때문이든, 카드 값 때문이든 오늘 하루도 잘 버텨낸 나에게 ‘피식’ 하고 나오는 소소한 웃음을 선사하며.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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