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노 나오유키 "죽기 직전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드는 게 최선의 고령화 대책"

입력 2019-05-12 17:52  

한경 인터뷰

'고령화 맞춤 정책' 주창하는
요시노 나오유키 ADB연구소장



[ 김동욱 기자 ] “복지정책에 ‘공짜’란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마치 복지와 증세가 별개인 것인 양 행동하는데 사회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선 그만큼 증세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행동은 그다음이지요.”

요시노 나오유키(吉野直行) 아시아개발은행(ADB)연구소장은 일본 경제학계에서 ‘아이디어 맨’으로 꼽힌다. 머릿속 경제이론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하거나, 타성에 젖은 경제정책을 개선할 방책을 꾸준히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 문제에 대해선 전통적인 재정정책의 효용이 떨어지는 원인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확대와 관련해서는 인프라 투자 활성화를 위해 인프라 구축에 따른 지역 발전의 ‘열매’ 중 일부를 개발업자에게 제공하자고 주장한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일본과 한국 경제가 직면한 고령화 문제 등을 큰 주제로 삼아 ‘독창적’인 생각을 술술 풀어냈다.


▷최근 일본 경제가 지표로는 개선되고 있지만 평가는 엇갈리고 있습니다.

“현재의 일본 경제 상황을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의미의 ‘경기 확장기’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일본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제로(0)금리 정책 등으로 돈을 풀어왔습니다. 그 결과로 각종 고용과 경기 지표가 좋아졌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초저금리 정책의 결과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이 계속 연명하면서 도산이 줄었을 뿐입니다. 최근 지표가 개선된 것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관광객이 대폭 증가하고 건설 수요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 큽니다. 그래서 경기가 개선된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베노믹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느낌입니다.

“아베노믹스에서 평가할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 국민에게 모두가 ‘인생 100년’ 동안 계속 일해야 한다는 점을 각성시킨 것이 중요합니다. 생산성에 기반한 임금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도 주목됩니다. 연공서열제로 대표되던 일본에 생산성 중심의 임금체계가 필요하고, 오랫동안 일할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부가 좀 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재정이나 통화정책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고령화의 영향을 지목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는 일본이 직면한 ‘1번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정부의 재정·금융정책은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생산성 향상→이윤 증대→근로자 임금 증가→고용 증가→전체적인 경기 개선의 경로로 효과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 전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줄고, 소비가 확대되지 않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모두 늘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초저금리 정책은 주로 연금과 그동안 모아둔 금융자산에 의존하는 퇴직자들의 수입이 없어진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여러 측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효과를 볼 여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고령사회를 맞아 정부 정책의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야 할까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경기가 좋아 보여도 결국에는 지속되기 힘듭니다. 고령화 문제는 금융정책, 재정정책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고령화 대책은 결국 모두가 오랫동안 일할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최선의 정책은 모두가 ‘죽기 직전까지 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생산성에 맞는 임금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일본 기업은 연공서열제로 운영돼 비효율적이고, 각종 사회보장 정책은 재정적자 탓에 확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세금 인상입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일하게 된다면 사회보장을 크게 줄여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재정지출의 60% 수준까지 지출을 줄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모두가 일한다면 세금을 인상할 필요도 없고 재정적자 문제도 해소됩니다. 세금을 늘리지 않으니 젊은 층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해 그만큼 소비도 늘게 됩니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본보다 연공서열 문화가 일찍 깨졌고 이직·전직이 자유로운 한국은 고령화에 대처하기 좋은 체제를 갖췄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생산성에 맞는 임금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종 사회보장에 대해서도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고령화가 진전되면 사회보장에 대한 요구도 강해집니다. 복지라는 것이 개개인에겐 좋은 일이지만 국가로선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보장을 확충한다면 그만큼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일본에선 정치인들이 사회보장 확대와 세부담 증가가 마치 별개인 것처럼 다뤄왔습니다. 한국은 일본이 갔던 길을 가선 안 됩니다. 정부가 사회보장을 확충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국민에게 ‘이만큼 세금이 늘어납니다’라는 것을 충실히 제시한 다음에 시행해야 합니다. 복지를 위한 세출 증가도 국민이 비용 부담을 동의하는 수준까지만 이뤄져야 합니다. 복지만 확대하고 세원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파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사회격차 해소와 소비 진작을 명목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복지정책은 정부가 부담해야 합니다. 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이 부담하도록 해선 안 됩니다. 빈부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지출을 늘려 시행해야 하고 그만큼의 재원을 세금으로 추가 징수해야 합니다.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하면 얼마가 필요한지 산출해서 세금을 올려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사회 안정을 위해선 사회보장 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 유동성’에 대한 믿음을 사회가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20세기 내내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것은 ‘열심히 공부하면 출세할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국민 90% 이상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경제성장과 인프라 투자는 관련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아시아 개도국들은 인프라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문제는 민간자금이 인프라 투자에 생각만큼 많이 유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프라 투자 사업의 수익성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수도, 도로, 전기시설 등의 투자에 높은 수익이 보장돼야 투자가 이뤄질 텐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게 사용료밖에 없다보니 민간 투자가 부진했습니다. 도로 통행료 같은 것을 무턱대고 계속 올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목한 것이 인프라 투자에 따른 지역개발 효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수도가 들어가면 주거시설이 개선되고, 공장이 들어섭니다. 지역 개발이 이뤄지고 그 지역 지가도 오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토지세, 기업세, 소득세가 모두 늘어납니다. 세수입 증가분의 일부를 인프라 투자자에게 돌아가도록 처음부터 설계하면 인프라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 같은 주장을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도 꽤 있어 보입니다.

“언제부터 인프라 투자에 따른 조세수입 증대 효과가 있을지, 수입 증가분이 얼마나 되고 인프라 투자 기여분이 어느 정도인지도 다 추계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 바탕가스 지방에선 고속도로가 신설되자 4년 뒤부터 지역 세수입이 세 배 정도 늘었습니다. 도쿄~오사카 간 신칸센이 들어선 이후 4년 뒤 세수입이 두 배 늘어난 선례도 있습니다. 이 같은 인프라 투자 원칙은 북한을 개발할 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개방돼 인프라 투자가 시행된다면 중소기업이 늘고 한국에 큰 시장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요시노 나오유키 ADB연구소장은…

2014년부터 아시아개발은행(ADB) 산하 싱크탱크인 ADB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일본 대표 거시경제 전문가다. 도호쿠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지도교수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경제고문을 지냈던 앨런 월터스 교수다. 월터스 교수는 차별적 가격책정 이론인 ‘피크 로드 가격(Peak Load Pricing)’이론을 창시한 인물이다.

요시노 소장은 월터스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순수 경제이론보다는 경제정책의 현실 적용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 뉴욕대와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현재 게이오대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과 일본은행, 금융청 등의 정책고문을 지냈다. 《금융》 《금융경제》 《통화정책과 석유시장》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거시경제정책》 등 다수의 영어·일본어 저서가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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