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등록금 인상" 요구 못하는 대학들
[ 박종관/김동윤 기자 ] 대학의 자율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4항은 ‘대학의 자율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울 시내 주요 사립대 관계자들은 “교육부가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입학정원과 학생 선발 방식, 온라인 강의 비중까지 교육부의 규제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대학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 시작점에 ‘반값 등록금’ 정책이 있다고 분석한다. 가격 규제로 대학의 손발을 묶은 교육부가 재정지원 사업을 볼모로 대학을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등록금 인상 막아선 교육부
반값 등록금 정책은 대학의 지나친 등록금 인상으로 늘어난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2년 본격 시행됐다. 정부가 마련한 국가장학금을 소득과 연계해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것이 정책의 골자다. 문제는 교육부가 장학금 지원 조건으로 등록금 동결을 내걸면서 반값 등록금 정책이 ‘창구지도’의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국가장학금 Ⅱ유형 제도를 통해 사실상 강제적으로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막고 있다. 교육부는 연간 4000억원에 달하는 국가장학금 Ⅱ유형의 지원 대상 학교를 등록금 인하·동결 대학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가장학금 Ⅱ유형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학은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도 신청할 수 없다.
대학은 최소한 법에서 정한 상한선만큼이라도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입장이다. 고등교육법 11조는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4년제 일반대학 및 교육대학 196곳 중 2019학년도 등록금을 인상한 학교는 5개뿐이다. 지방의 한 사립대 예산팀장은 “돈줄을 쥐고 있는 교육부가 법에서 정한 등록금 인상 한도마저 무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당 규제에 혁신 막힌 대학들
등록금 인상을 제지당한 대학은 교육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더욱 목을 맨다. 정부 재정지원은 대학의 주 수입원이 됐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교육부는 재정지원 사업을 무기로 대학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교육부는 올초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시간강사의 고용 안정성을 위해 관련 내용을 성과지표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시간강사의 고용 안정성과 대학 혁신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교육부가 입맛에 맞지 않는 대학엔 좋은 점수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도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해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위주 정시전형 비율을 30% 이상 늘려야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부의 황당 규제가 대학의 혁신을 막는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이 운영하는 온라인 강의가 전체 강의 수의 2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입학정원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늘릴 수 없다. 온라인 강의를 기반으로 세계 각국의 우수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는 ‘미네르바스쿨’과 같은 혁신 대학이 한국에서 탄생할 수 없는 이유는 규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되돌릴 수 없는 복지 포퓰리즘 정책
일각에선 반값 등록금 정책이 ‘성역화’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책 시행 이후 대학 재정이 파탄 위기에 내몰렸지만 등록금 인상을 주장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요 사립대 관계자들도 “등록금을 다시 올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경쟁 끝에 탄생한 반값 등록금 정책의 태생적 특성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 정책을 처음 제시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정당이었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은 2006년 지방선거 때 표 결집을 위해 과감하게 ‘좌클릭’을 택했다. 당시 내놓은 반값 등록금 정책을 받아들여 시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명박 정부였다.
한계에 다다른 대학들이 곳곳에서 ‘SOS’를 외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수 정권이 시작한 반값 등록금 정책을 이제 와 뒤집는다면 전국 수십만 대학생 및 학부모들로부터 비판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반값 등록금은 보수와 진보가 합작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말했다.
박종관/김동윤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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