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확대땐 兆단위 추가 보조금
"세금으로 버스노사 달래기" 비판
[ 김우섭/양길성/추가영/임도원/박진우 기자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경기 등 전국에서 버스준공영제를 시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1년 전부터 예견됐던 버스 총파업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국민 세금으로 버스 노사 달래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전체적으로 대중교통수단에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쪽으로 당 정책 방향을 잡아야겠다”고 밝혔다. 준공영제는 지방자치단체가 버스업체의 운송 수입을 관리하면서 적자가 발생하면 업체에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다.
준공영제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버스회사에 추가로 투입되는 보조금만 조(兆)단위에 달할 전망이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준공영제를 도입한 여덟 개 지자체(일부 도입 포함)에서 2018년 한 해에만 1조652억원이 투입됐다. 경기도가 광역버스 전체와 시내버스로 확대하면 최소 2000억원 이상이 추가로 들 전망이다.
민주당은 버스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요금 인상은 국민 동의가 전제될 때 가능한 일로 보인다”고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과 관계부처장관회의를 열어 교통 인프라 확충과 광역교통 활성화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버스업체 지원 방안에 합의했다. 또 500인 이상 버스사업장에 대한 기존 근로자 임금지원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전국 주요 도시의 버스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는 ‘버스대란’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류근중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만났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버스요금 인상을 주장한 정부에 이어 정치권에선 준(準)공영제 도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버스회사 적자를 보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 등 일부만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버스대란을 막는 데 들어가는 국민 세금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버스노조는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에 대해 교섭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며 14일까지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준공영제’ 카드 꺼내든 정치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5일 예고된 버스노조 총파업에 대한 대책으로 준공영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중교통 수단은 점차적으로 준공영제를 하는 쪽으로 당의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버스에서 나온 모든 수입을 일괄적으로 모은 다음 각 버스회사에 분배금 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시는 시내버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지난해에만 5402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야당은 당정이 버스 문제 해결에 재정을 투입하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경북 구미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버스 값 올리고 그 다음에 모자라는 건 고용기금에서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이게 다 우리 돈”이라며 “국민 돈, 세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고용기금 등을 통해 신규 인력 인건비, 기존 종사자 임금 감소분에 대한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지원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홍 부총리는 이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었지만 지자체가 면허권을 갖고 있는 버스 운송사업자에 대한 국비 지원은 재정원칙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준공영제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논의도 여전히 빠져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버스기사 근무 방식을 1일 2교대로 바꾸고 임금 수준을 준공영제 평균 임금으로 끌어올리려면 약 1조3433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지역의 버스기사 평균 월급은 368만원으로, 그렇지 않은 지역의 버스기사 월급 341만원에 비해 7.9% 많다.
특별·광역시 “요금 인상 계획 없어”
이 대표와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 김 장관,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 수석은 이날 국회에서 비공개 당·정·청 회의를 연 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분담 문제 등에 대해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가 요구하는 준공영제 도입과 요금 인상 등의 해결책에 대해선 지자체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제 도입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자동차노련 대구시버스노조는 이날 대구시 중재 아래 22개 버스회사가 포함된 대구시버스운송사업조합(사측)과 합의해 파업을 철회했다. 그러나 경기도,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등 각 지역 버스업체 노조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당장 오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받는 300인 이상 시내·외 버스 사업장이 24개 업체에 달하는 경기도는 “국비 지원 없이는 버스 파업을 막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들 업체가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1일 2교대로 근무체계를 바꾸려면 운전기사 5000명을 충원해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만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관계자는 “버스 업체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요금을 인상하거나 정부 예산 지원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또 요금을 인상할 경우 버스 환승을 하고 있는 서울시와 인천시도 함께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시와 인천시는 당장 버스 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지자체들이 버스 요금 인상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정부는 버스대란을 막는 데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김우섭/양길성/추가영/임도원/박진우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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