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걸 해보고 싶었어요!”
‘필드위의 철학자’ 김인경(31·한화큐셀)이 다시 일을 벌였다. 이 일은 미완으로 끝났다. 하지만 여운을 남겼다. ‘끝없는 도전’이다.
김인경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 데저트의 클래식 클럽에 골프 라운드를 하러 나갔다. 연습 라운드도 아니고 지인들과의 푼돈 내기 ‘친선 라운드’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US오픈 1차 예선전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최고권위의 대회는 예선에서부터 녹록지 않았다. 그는 7190야드(파72)로 세팅된 이 코스에서 전반 40타,후반 41타를 쳐 81타를 적어내 예선탈락했다. 사막기후가 특성인 이 코스는 남자프로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큼 공략하기가 까다롭다. 이날 80여명이 출전한 예선에서 언더파를 친 선수는 4명에 불과했다. 예선통과 성적은 72타 이븐파. 5명만이 1차 예선을 통과했다. 이들은 다시 이 코스에서 열리는 2차 예선을 거쳐야 US오픈행 티켓을 거머쥘 수가 있다. 미국 US오픈 예선전은 소정의 핸디캡을 충족시키거나 남녀 프로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본 대회는 다음달 13일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에서 열린다.
김인경은 예선전을 끝낸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커트 통과가 목표라기보다 뭔가 지금까지는 해보지 않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쪽이 더 컸어요. 물론 연습으로도 훌륭하죠. 이런 험난한 코스라면 다음 시즌을 위한 대비훈련으로도 의미가 있거든요.”
이번 예선은 클래식 코스 특유의 단단단 벙커와 사막성 고온, 캐디없이 혼자 백을 메고 걸어다니며 경기를 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작은 체구의 김인경에게는 험난한 여정이다. 김인경은 “너무 더워서 라운드를 즐길 새가 없었다”며 웃었다.
그와 함께 동반 라운드를 한 아마추어 골퍼인 닉 필런(24)은 “가끔 PGA투어 프로들과 예선전을 치러보긴 했지만 여자 선수와 하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USGA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지역에서 열린 US오픈 예선에 여자선수가 출전한 것은 15년만이다. 필런은 “김인경의 샷은 늘 똑바로 나갔고 원하는 곳에 공을 떨어뜨렸다. 무엇보다 위험성을 회피하는 매니지먼트 전략을 배울 수 있어 정말 유익했다”고 말했다.
200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데뷔한 김인경은 11년 만인 2017년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컵(브리티시여자오픈)을 들어올리는 등 통산 7승을 수확했다. 2012년에는 유명한 ‘나비스코 퍼팅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30cm짜리 짧은 퍼팅을 놓쳐 메이저 대회 첫승을 5년이나 미뤄야 했다. 그는 이후 미술 음악 종교 봉사 독서 여행 등에 심취해 골프와 골프 이외의 삶을 하나로 통합하는 노력을 많이 해왔다. ‘필드 위의 철학자’라는 애칭이 붙은 것도 그래서다. ‘남모르게 하는 기부’도 많이 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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