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형규 기자 ]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우리 속담에 ‘말은 할수록 거칠어지고, 가루는 칠수록 고와진다’고 했다. 중국 송나라 때 《태평어람》은 “질병은 입을 통해 들어가고, 화근은 입을 쫓아 나온다”고 가르쳤다. 성경 잠언은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한다”고 했다.
요즘 막말과 실언(失言) 콘테스트를 벌이는 한국 정치판을 꼬집은 말들 같다. ‘더 세게, 더 험하게, 더 욕되게’ 해야 효과가 있는 양 말이 갈수록 살벌해진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달창’ 발언으로 비난받기 무섭게,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사이코패스’라고 지칭했다. ‘버럭 이해찬’이란 별명의 여당 대표는 야당을 “도둑놈들”이라고 했고, 김무성 한국당 의원은 ‘청와대 폭파’ 발언을 내뱉었다. 막말에 남녀·노소·좌우가 따로 없다.
정치인 막말은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을 ‘귀태(鬼胎: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등신’ ‘노가리’ ‘쥐박이’ ‘그년’ 등 험한 말로 비하하기 일쑤였다. 자꾸 듣다보니 웬만한 막말에는 면역이 생길 지경이다.
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고 여기는 탓이다. 기본적으로 ‘관종(관심받고 싶어하는 사람)’인 정치인들에겐 존재감을 부각하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수단인 셈이다. 따라서 막말이 잦아질수록 총선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상대편이 하면 막말이어도 자기편이 하면 ‘사이다 발언’으로 여기는 대중의 이중잣대가 그 토양이 된다.
하지만 갈증 날 때 사이다가 시원한 게 그때뿐이듯, 막말은 부메랑처럼 자신을 때린다. 막말로 신세 망친 정치인은 부지기수여도 성공한 정치인이 없는 이유다. 유권자들이 어리숙해 보여도, 그들의 치부책에 차곡차곡 감점되고 있음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일본 자민당이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실언 방지 매뉴얼’을 만들어 눈길을 끈다. 소속 의원이나 예비후보들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표를 까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으면서, 일본 정치판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게 흥미롭다.
막말과 실언은 제도나 매뉴얼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개개인의 심성과 집단의 수준에 달려 있다.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한 이들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 정치의 희극이자 비극이다.
다섯 왕조, 열 명의 군주를 모신 중국 재상 풍도(馮道)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고 했다. 말 한마디로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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