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의무가입 7월 시행예고
대학 "유학생 더 늘리라면서…"
[ 정의진 기자 ] ‘먹튀 외국인’을 막기 위한 국민건강보험 개정안의 불똥이 엉뚱하게 외국인 유학생에게 튀고 있다. 오는 7월부터 6개월 이상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건보 가입을 의무화하기로 하면서 외국인 유학생이 내야 할 보험료가 여섯 배가량 늘어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유학생 20만 명 유치 목표가 공염불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행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의견 조율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17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교육부와 복지부는 외국인 유학생의 건보 의무 가입을 두고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건보 적자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의 건보 의무 가입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급격한 보험료 인상은 개발도상국 유학생 유치를 어렵게 만들어 정부의 신(新)남방정책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14만여 명인 외국인 유학생은 대부분 시중 민간보험을 이용하고 있다. 유학생 맞춤형 민간보험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유학생은 연평균 10만~12만원만 내면 건보와 비슷한 수준의 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정부가 국내의 값싼 의료보험 혜택만 받고 출국해 버리는 일부 외국인의 먹튀 진료를 막기 위해 건강보험법을 개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외국인 유학생까지 의무적으로 건보 지역가입자가 되면서 이들은 연간 67만8360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기존 민간보험보다 6배나 늘어난 셈이다.
내국인은 소득에 따라 건보료가 차등적으로 부과되지만 외국인은 소득 추계가 어려워 건보 지역 가입자 평균 보험료만큼 내도록 해왔다. 이 중 유학생은 평균의 절반을 부과한다. 대부분 소득이 없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가입자 평균을 기준으로 삼아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지만 소득이 없으면 최소 요율을 적용해 월 1만원대 보험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국제처 관계자 A씨는 “연간 60만원 정도의 추가적 비용 부담은 외국인 유학생에게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발도상국의 정부 지원을 받고 유학 오는 학생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정부는 5월에야 대학에 관련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왔다”며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면 타국 정부에서 국비지원 금액에 인상된 보험료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인상된 보험료만큼 생활비를 줄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꼬집었다.
서울대 학생처 관계자도 “정책적 목적에 따라 보험 보장을 늘리는 방향으로 강제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정책이든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학생에 대한 건보료 인상이 장기적으로 국가 이미지에 해가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유학생 사이에선 한국 정부가 국내 요인으로 발생한 건보 적자 문제를 외국인 유학생으로부터 채우려 한다는 인식이 파다하다”며 “당장 세금을 조금 보전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국가에 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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