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금감원 등서 걸려온 것처럼
발신 전화번호 변경·조작 '주의'
[ 임현우 기자 ] “△△캐피탈 대출팀장입니다. 1000만원 전환대출이 가능한 대상으로 선정되셨는데 신용점수가 약간 부족하네요. 대출을 발생시켜 갚는 방법으로 신용등급을 올리면 됩니다.”
지난 2월 자영업자 A씨는 ‘1577-XXXX’ 번호로 걸려온 솔깃한 전화를 받았다. 우선 △△캐피탈의 대출 전용 앱(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유명 신용카드사인 OO카드에서 카드론을 받아 곧바로 상환하면 신용등급이 상승해 모바일 대출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마침 급전이 필요했던 A씨는 대출팀장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앱을 설치한 A씨는 OO카드에서 카드론 500만원을 받았다. 잠시 후 OO카드 대표번호 ‘1588-XXXX’로 전화해 상담원이 알려준 계좌로 500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대출해준다던 △△캐피탈에선 소식이 없었다. 한 달 뒤 받아든 OO카드 청구서엔 상환되지 않은 카드론 500만원이 찍혀 있었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것이다.
A씨가 설치한 앱은 타인의 휴대폰에서 거는 전화를 가로채는 악성 앱이었다. 이 앱이 깔리면 카드사는 물론 경찰서, 금융감독원 등의 대표번호로 전화해도 모두 사기범 일당으로 연결된다.
1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전화 가로채기 앱, 원격조종 앱을 동원한 신종 보이스피싱이 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출처가 불분명한 앱은 절대 설치하지 말라”며 “112(경찰), 02-1332(금융감독원) 등에서 걸려온 전화도 발신번호를 변경·조작한 것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 3월에는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이 ‘자금세탁 방지’를 명분으로 특정 앱 설치를 유도한 사례도 있었다. 사기꾼이 설치를 권한 앱은 ‘퀵 서포트’라는 팀뷰어로, 타인의 스마트폰을 원격 조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들은 피해자의 휴대폰에서 계좌 이체,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을 줄줄이 실행해 총 1억9900만원을 빼돌렸다.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2015년 5만7695건에서 2016년 4만5921건으로 잠시 줄었다가 지난해 7만218건으로 다시 급증했다. 금융위는 대표적인 피해 유형으로 ①저금리 대환대출을 이유로 송금 유도 ②악성 앱 설치를 유도한 뒤 자금 편취 ③물품대금을 대신 받아 전달해달라는 요구 ④전화로 수사기관 사칭 ⑤메신저로 지인 사칭 ⑥구매대행 아르바이트를 모집해 자금세탁에 이용 등을 꼽았다.
정부는 통신사들의 협조를 얻어 오는 24일까지 전 국민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다. 《매일 130명, 10억원 피해 발생! 의심하고! 전화끊고! 확인하고!》라는 내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성별, 연령, 지역과 무관하게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만에 하나 피해를 당해 돈을 송금했다면 경찰이나 금융사로 연락해 피해를 신속히 구제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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