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독재정권은 소수 그룹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독재권력을 요구하기 위한 정치적 정당성 차원이다.”
“인류 발전의 원천은 자비심이 아니라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는 이기심이다”
“모든 독재정권은 몇몇 소수 그룹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독재권력을 요구하기 위한 정치적 정당성 차원이다. 소련에서 희생양은 부르주아 유산계급이었고, 나치 독일에서는 유대인이었다. 미국에서 그 희생양은 사업가들, 특히 대기업가들이었다.”
아인 랜드(Ayn Rand·1905~1982)는 20세기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소설과 에세이 등을 통해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가 1943년에 쓴 소설 《마천루(The Fountainhead)》는 2500만 부 이상 팔렸다. “인류 발전의 원천은 인간의 자비심이 아니라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는 이기심”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간섭받지 않는 기업인의 창의력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고도 했다. 1957년 발표한 《아틀라스(Atlas Shrugged)》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가운데 2위에 올랐다. 그는 이 소설에서 좌파의 선전선동과 기업 규제로 인해 몰락해가는 도시를 묘사했다.
그의 저서들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앨런 그린스펀 전 중앙은행(Fed) 의장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랜드가 시장경제 선봉역을 자임한 데는 러시아에서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작용했다. 러시아 혁명으로 부친이 경영하던 약국이 국유화됐고 가족은 전 재산을 잃었다. 그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공산주의의 억압과 통제를 이기지 못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경쟁의 궁극적 조정자는 자본시장
랜드는 “국가가 할 일은 최소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력과 사기 등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각종 계약을 집행하는 과제만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국가만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1966년에 출간한 《자본주의의 이상(Capitalism: The Unknown Ideal)》엔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24부 567페이지로 구성돼 있다. 그린스펀 등 당대 지식인 세 명의 논문 및 평론 여섯 편도 실려 있다.
랜드는 기업인이 세상을 변혁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봤다. ‘세상을 떠받치는 진정한 영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신약과 의료기 발명, 혁신 등으로 인류를 공포 유행병 기근에서 구출하고, 일자리 창출 등으로 삶의 수준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는 기업인의 창의를 해쳐 사회발전을 저해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몇십 년 동안 기업인들은 공산주의자, 파시스트, 또는 복지국가 등 모든 종류의 국가통제주의의 희생양이 돼왔다. 누구의 죄와 악 때문에 기업인들이 비난을 받았는가? 그것은 규제로 시장을 왜곡시킨 관료들의 죄와 악이다.”
개입과 간섭을 통해 통제하려는 정부 폐해를 지적한 랜드는 특히 독점금지법이 초래한 문제들을 맹렬히 공격했다. 랜드는 1890년 제정된 셔먼법을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법률’이라고 했다. “자유 경쟁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자유방임이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경쟁의 궁극적인 조정자는 자본시장이다. 그러나 독점금지법은 자본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야기시키는 등 완전히 반대의 조건을 만들었다. 소비자 편익 등 당초 이루고자 했던 것과도 반대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자본주의 대변 못하는 지식인 각성해야
랜드는 “시장은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곳”이라고 역설했다. 인간은 독립적 판단과 노동의 결실을 통해 스스로 경제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가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높였다.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노동자의 임금을 지속적으로 상승시켜 왔다. 이는 역사적으로 실증된 사실이다.”
랜드는 자본주의 위기를 진단하고 행동하기를 꺼리는 지식인들의 각성도 촉구했다. 반(反)기업 정서 등으로 자본주의를 훼손하려는 좌파들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지 않는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쇠퇴를 방조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잘못된 정보, 그릇된 설명, 자본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기만이 범람해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본주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게 됐다. 자본주의의 적들이 미친 듯이 숨기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단순히 실용적인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유일한 합리적인 도덕적 체계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젊은 세대가 자본주의 내용을 들어보고 인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적게 말하는 자, 그리고 자본주의를 어설프게 얘기하는 자들은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무능하거나, 혹은 도덕적·철학적 문제와 같이 그들이 싸워야 할 곳에서 싸우기를 기피하고 있다.”
김태철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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