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자원 재분배 '설계주의' 버려야 시장활력 회복
상속·증여세 폭탄을 피해 이민 가는 자산가들이 최근 1~2년 새 크게 늘고 있다(한경 5월 20일자 A1,3면)고 한다. 지난해 해외이주 신고자가 2200명으로 한 해 전의 2.7배, 두 해 전의 4.8배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증여세를 피해 자녀들에게 재산을 제대로 물려주려는 50~70대가 많아진 게 이민자 급증 주요인으로 꼽힌다. 운영하던 회사를 아예 처분하고 해외에서 새로 출발하려는 이들도 많다는 게 관련업계의 전언이다.
기업인을 비롯한 고소득자들의 ‘탈(脫)한국’ 바람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 10년 만의 최대다. 이들의 이주 선호국 ‘빅3’가 미국 캐나다 호주로 하나같이 상속·증여세가 없거나 관련 혜택이 많은 나라라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민이 4배 안팎 급증한 캐나다와 호주는 상속·증여세가 없다. 미국은 지난해 상속·증여세 면제한도를 1120만달러로 두 배 넘게 늘려 부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싱가포르 모나코 등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는 나라로도 이주 신청이 급증했다.
반면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세계 2위다. 할증을 감안하면 직계비속이 회사를 물려받을 때의 최고상속세율은 65%로 치솟는다. 사실상 세계 최고세율이다 보니 자산가들로서는 살 길을 스스로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 13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도 상속세가 ‘제로(0)’다. 법대로 세금을 물면 3분의 2를 내야 해 경영권이 위협받게 되는 중견기업 오너 등이 이민을 통한 편법상속에 목을 매게 되고, 이는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은 기업과 인재 유치를 위해 세율 낮추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법인세 경쟁도 총성 없는 전쟁이다. 미국은 35%이던 법인세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21%로 크게 내렸다. 세계 최대의 거대한 경제가 연 3% 안팎의 성장동력을 회복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OECD 회원국 중 최근 5년 내 법인세를 내린 나라는 일본 영국 덴마크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이스라엘 등 14개국에 달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22%이던 법인세율을 지난해 25%로 올렸다.
상속세와 법인세 인하를 거론하면 ‘부자 감세’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편견이다. 상속세를 인하하면 상속계층은 물론이고 비상속계층의 총 사회적 후생이 증가한다는 게 정설이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법인세율 3%포인트 인상 시 투자는 7조원, 일자리는 5만~6만 개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있다. 법인세 부담은 제품가격과 사내 복지 축소로 전가돼 결국 소비자와 종업원들이 절반 정도를 부담하기 때문에 부(富)의 재분배 효과도 없다는 학계의 설명이다.
가혹한 징벌적 상속·증여세나 높은 법인세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게 절실하다. 업종과 국경의 구분이 없어진 글로벌 경쟁시대에 다른 나라보다 높은 세금을 유지하면서 기업에 큰 투자를 바랄 수는 없다. 기업가가 상속세에 대한 걱정을 덜어야 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본질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고, 법인세로 빠져나가는 자금이 적어야 투자가 늘어난다는 상식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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