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시절 귀농하기로 결심
"와사비가 마지막 희망이다" 생각
[ 이지훈 기자 ] 국내 첫 고추냉이(와사비) 생산농가인 ‘철원고추냉이家(가)’는 강원 철원군의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있다. 천연 용천수가 흐르는 이곳에서 국내 고급 일식집에서 사용하는 국산 와사비가 생산된다. 고추냉이를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 중인 박상운 철원고추냉이家 대표(사진)를 철원 농장에서 만났다.
벼랑 끝에서 시작한 와사비 농사
박 대표와 그의 아버지 박정원 회장이 와사비 농사에 발을 들여놓은 건 1997년이다. 이들 부자(父子)는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와사비 종묘를 보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그동안 해온 비료사업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면서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었다. 남은 재산은 철원의 조그마한 땅이 전부였다. “와사비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철원 300평(약 990㎡) 땅에 4300만원을 쏟아부어 농사를 시작했다.
박 대표의 농가가 있는 강원 철원 민통선 안은 사계절 내내 13.5도 내외의 수온이 유지되는 1급 용천수가 나오는 곳이다. 와사비는 연중 온도 편차가 3도 이상일 경우 잘 자라지 않는다. 박 대표는 “와사비 생육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물”이라며 “이곳 철원은 수질, 수량, 수온 모두 와사비 재배에 딱 들어맞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재배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국내엔 아무도 없었다. 거듭된 연구와 재배실험을 통해 철원고추냉이家만의 비법을 쌓아갔다. 처음엔 소량만 생산했지만 재배 방법을 터득하면서 재배량이 늘어났다. 면적도 차츰 늘려갔다. 지금은 농장 면적이 8400평(약 2만7768㎡)에 이른다. 연평균 2.5~3t의 와사비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초기엔 와사비를 파는 데도 애를 먹었다. “한국에서 와사비 재배가 제대로 되겠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와사비에 대한 수요도 지금처럼 뜨겁지 않던 시절이다. 이때 한 일류 호텔 주방장이 이들 부자가 생산한 와사비의 진가를 알아봤다. “일본산에 비해 값이 싼데도 품질은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한번 거래처가 뚫리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도 철원산 와사비 주문이 들어왔다.
관광지 조성, 와사비음료 추진
승승장구하던 철원고추냉이家는 4~5년 전 연거푸 고비를 맞았다. 비닐하우스 규모를 늘리는 과정에서 흰가루병이 발생했다. 정성껏 키운 고추냉이들이 한순간 힘을 잃고 쓰러졌다. 박 대표가 직접 화학황을 만들어 흰가루병 잡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 황화수소를 박테리아가 먹은 뒤 이를 배설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바이오황’의 존재를 알게 됐다. 바이오황을 쓰자 병도 잡히고 약흔도 사라졌다. 와사비 잎은 더 푸른빛을 내면서 빨리 자랐고 알싸한 와사비의 풍미는 더 깊어졌다. 박 대표는 그간의 시행착오에 대해 “왜 농사가 실패했는지 모를 때가 가장 답답했다”며 “하지만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 최적의 재배조건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 와사비 시장 규모는 이 농가가 재배하는 근경(와사비의 땅속줄기)을 기준으로 10억원 남짓이다. 와사비 잎을 갈아서 제조하는 튜브형 제품 등을 감안하면 시장규모는 수백억원대로 늘어난다. 지금까지는 횟감에 곁들이는 식재료 정도로 여겨졌지만 알싸한 풍미와 효능이 알려지면서 소비자층도 점차 두터워지고 있다.
최근 박 대표는 민통선 안에 자리잡은 철원 농가를 관광단지로 변신시키겠다는 꿈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남과 북이 단절된 민통선 안 천혜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와사비를 키워내는 이곳 농가의 특별함은 관광상품으로서의 잠재력도 크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8월부터 송어체험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관광단지 조성 계획의 일환이다. 탈취제와 와사비음료를 개발하는 등 수익 다변화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와사비 성분을 활용한 치약, 화장품, 천연비누, 천연오일 등으로 품목을 확장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와사비의 항암효과와 살균 작용은 이미 검증됐다”며 “질 좋은 국산 와사비를 소비자들에게 더 많이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철원=FARM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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