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겉옷에 맞춰 입는 내의로 이른바 '런닝' 혹은 '난닝구'라고 불렸던 메리야스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큰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다. 메리야스는 1946년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반팔 형태로 제작됐다가 활동성과 착용감 향상을 위해 점점 민소매로 진화했다.
이후 2012년 상의용 속옷 시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브랜드 유니클로에서 '에어리즘(AIRism)'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에어리즘은 출시하자마자 세련된 브랜드명과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0년 PB브랜드 '데이즈'를 출시한 이마트도 에어리즘의 성공을 보면서 2014년 데이즈의 속옷 브랜드인 '쿨리즘'을 시장에 내놓고 대항마를 자처했다.
◆ 유니클로 호실적 일등공신 '에어리즘'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니클로를 운영 중인 에프알엘코리아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1조3732억원과 234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11%, 33% 증가했다. 이는 국내 단일 패션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4년 연속 1조원 매출을 달성한 것이다. 패션업계의 불황을 감안하면 한국인의 유니클로 사랑은 유별나다. 유니클로는 에어리즘의 구체적인 매출이나 판매량 공개를 한사코 거부하지만 내부에서는 유니클로 실적의 1등 공신으로 단연 에어리즘을 꼽는다.
에어리즘은 2012년 출시 당시 광고가 화제였다. 서양인들이 에어리즘의 착용감을 말하던 광고 콘셉트가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줬고 각종 이벤트로 모객에 나서면서 매출이 확 늘었다. 이른바 '세련된 메리야스'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에어리즘의 인기는 '유니클로 감사제' 이벤트를 할 때 두드러진다. 매장을 둘러싼 줄이 길게 늘어서는 것은 물론 옷을 고르는 시간보다 계산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모두들 손에는 에어리즘을 두세 개씩 들고 있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유니클로는 에어리즘의 인기 비결에 대해 소재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섬유회사 '도레이(Toray)'와 '아사히 카세이(Asahi Kasei)'가 공동 개발한 신소재로 만들어 습기와 열기를 호흡하듯 방출한다는 것이다. 또한 두께가 얇아 옷을 입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고 실루엣과 스타일을 살리기 때문에 착용감과 디자인까지 갖췄다는 설명이다.
유니클로는 에어리즘 개발을 위해 R&D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도레이와 함께 개발한 극세섬유로 남성용 에어리즘을 만들어 가벼운 착용감을 구현했고 여성에 비해 땀이 많이 때문에 통기성을 높였다. 아사히 카세이와 함께 개발한 큐프라 소재는 여성용 에어리즘에 적용돼 땀이 나도 달라붙지 않는 부드러운 촉감을 제공했다.
지난해부터는 민소매와 반팔뿐만 아니라 9부, 10부 등 긴 소매 기장의 제품을 선보였고 봉제선이 없는 '심리스(seamless)' 타입도 제작해 라인업을 다양화했다.
지난 4월에는 에어리즘 모델로 발탁된 배우 지성의 광고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성은 "에어리즘은 뛰어난 기능성을 갖춰 움직임이 많은 촬영 현장은 물론 가족들과 일상에서도 즐겨 입는 아이템"이라고 밝혀 신뢰성을 높이려던 유니클로의 마케팅 전략이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에어리즘의 대항마 이마트 '쿨리즘'
2010년 탄생한 이마트의 PB브랜드 '데이즈'는 그해 211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2013년에는 2000억원대의 매출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2014년 4000억원을 넘기는 매출을 기록하면서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마트 내부에서는 데이즈가 2014년에 매출이 급증한 것을 두고 그 해 출시한 데이즈의 서브 속옷 브랜드인 '쿨리즘(COOLISM)'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들은 쿨리즘이 유니클로의 에어리즘에 비해 소재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에어로쿨, 인견(人絹), 아스킨, 쿨맥스, 아쿠아로드, 시어서커 등 이름도 생소한 6가지의 여름 소재를 개발했다. 이마트는 남성, 여성, 아동의 세대별 특성에 적합하도록 소재를 혼합해 어떤 소비자가 착용하더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쿨리즘을 제작했다. 이 소재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나일론 냉감 소재의 고밀도 원단으로 만들어져 타 소재에 비해 얇고 밀착감이 좋으며 부드럽다는 점이다.
디자인은 총 17종으로 다양화해 누구든 원하는 스타일을 골라 입을 수 있게 했다. 남성 5종(런닝, 3부 상의, 브리프, 드로즈, 트렁크), 여성 6종(런닝, 3부 상의, 3부 하의, 브라, 팬티, 브라탑), 주니어 4종(런닝, 브라런닝, 브라, 팬티), 아동 2종(런닝, 팬티) 등이다. 특히 아동·주니어는 지난해까지 면 소재가 중심이었지만 올해부터 기능성 쿨 소재를 확대했다.
데이즈는 올해 '쿨리즘 브라탑'을 주력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 제품은 딱딱한 와이어와 후크 대신 가벼운 밴드로 가슴을 서포트해 민소매티셔츠처럼 착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쿨리즘 브라탑은 2012년부터 올해 3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200만장에 이르는 데이즈의 대표적인 인기 상품으로 기존에 적용했던 폴리에스터 소재의 브라탑에 더해 여름에도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한 브라탑 2종을 새롭게 선보였다. 그 결과 여름용 브라탑을 1만2800원에 출시해 판매 6주만에 6만장 이상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데이즈는 올해 더위가 빨리 찾아올 것으로 예상돼 쿨리즘 판매를 4월로 앞당겼다. 특히 '에어로쿨 남성 드로즈'는 가격이 최저 5980원에 형성됐으며 '에어로쿨 브라'는 최대 1만9800원으로 가격이 책정돼 2만원을 넘기지 않았다. 에어리즘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훨씬 앞선 유통망을 보유한 이마트가 품질 개발에 소홀하지 않고 마케팅을 잘한다면 두 브랜드 간 경쟁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며 "에어리즘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쿨리즘의 도전을 유통업계에서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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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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