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무시한 채 '배짱 영업'
고가 경품으로 사행성 조장
[ 이주현 기자 ] 전국 곳곳에 있는 ‘인형뽑기방’이 법률이 정한 가격의 10배가 넘는 불법 경품으로 소비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전국 인형뽑기방 업소 수는 4년 새 100배 이상 늘어났다.
26일 서울 노량진동에 있는 한 인형뽑기 가게를 찾은 학생 김모씨(27)가 인형뽑기 기계에 1000원을 넣고 집게를 조작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밀랍 모형)를 뽑았다. 해당 피규어는 비슷한 제품이 온라인에서 5만원대에 팔리고 있었다.
게임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게임물 관련 사업자는 소비자판매가격이 5000원을 초과하는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 그런데도 비행용 드론, 공기청정기 등 고가 전자제품을 경품으로 내건 업체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매품으로 소비자판매가격이 표시되지 않는 경품은 진열해도 괜찮다”며 영업을 계속했다.
전국의 인형뽑기 업소 수는 2015년 21개에서 올해 2280개(지난 4월 말 기준)로 108배로 늘어났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소비자판매가격이 표시돼 있지 않아도 불법 경품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가격이 표시되지 않은 비매품은 이와 비슷한 제품이 시중에서 얼마에 거래되는지를 참고해 규제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체들은 단속에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에 단속 권한이 있으나 인력 부족으로 사실상 단속이 이뤄지지 못하는 데다 처벌 수위도 낮아서다. 지난 1월 불법 고가 경품을 진열한 혐의로 기소된 한 업체 직원은 벌금 30만원이 부과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경품을 납품하는 유통업자 이모씨는 “올 들어 불법 경품으로 단속된 업체를 보지 못했다”며 “드물게 영업 정지되는 사례가 나오지만 인건비가 거의 들지 않는 사업이라 부담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업주들은 경품 가격 상한이 지나치게 낮아 인형뽑기 업체를 불법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품 가격 상한 5000원은 2007년 정해진 뒤 13년째 유지되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해 10월 경품 가격 한도를 1만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올 들어 이를 철회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게임산업 규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한 뒤 개정안을 다시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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