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태 기자 ] 정부와 시장 간 인식의 간극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 환율을 둘러싼 인식이 특히 그렇다. 원·달러 환율은 석 달 새 7% 가까이 올랐다. 달러당 1110원대이던 것이 12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원화가치는 그만큼 떨어졌다. 주요국 통화 중 가장 큰 하락폭이다.
며칠 전 한 고위관료 A씨와 사석에서 대화를 하다 물었다. 시장에서 환율 걱정이 큰데 괜찮냐고.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환율이 오르면 좋은 거 아닌가요?”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마저 얘기를 듣기로 했다. A씨는 말을 이어갔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에 유리하고, 수출이 잘되면 나라 경제도 잘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일부에선 환율이 급등해 경제가 위험하다고 불안감을 부추기는지 모르겠어요.”
말인즉슨 틀린 건 아니다. 거시경제에 정통한 차관급 관료인데 설마 틀린 논리를 얘기할까.
"환율 오른다고 수출 도움 안 돼"
이튿날 한 자산운용사 대표 B씨와의 자리에서도 환율이 소재에 올랐다. 그는 환율 얘기를 꺼내자마자 정부부터 성토했다. 환율이 뛰면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고 있는데 정부는 두 손 놓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환율이 오르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라고 했다.
B씨뿐 아니라 요즘 시장에선 환율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단기적으로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꼽는 이도 있다. 시장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환율 상승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다. 과거 같으면 환율 상승→가격 경쟁력 회복→수출 증가로 이어지겠지만 지금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수출이 안 되는 건 가격 경쟁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력 수출시장의 수요 감소 탓이 크기 때문이다. 수출 1위 시장인 중국은 더 이상 한국산 중간재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對)중 수출이 작년 11월부터 6개월째 내리막인 것도 반도체 등 중간재 수출 급감 때문이다. 대미 수출도 줄어드는 추세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표방하는 무역장벽 탓에 미국 경기가 좋다고 글로벌 경기에 볕이 드는 시대는 끝났다. 결국 환율이 오른다고 수출이 개선되리란 기대는 공허하다는 얘기다.
정부 안이한 인식이 더 문제
둘째, 환율 상승은 한국 경제의 허약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반영하는 측면이 크다. 1차적으론 안전자산인 달러 강세에 기인한 측면이 있지만, 유독 원화 하락폭이 경쟁국 통화 대비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 하강 속도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점을 감안하면 환율은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셋째, 환율 상승은 금융시장에 부정적이다. 당장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이탈이 심상치 않다. 외국인은 최근 보름 새에만 한국 주식을 2조3000억원어치 팔아치웠다. 원화 표시 자산은 온통 매도 우위다. 더구나 지속적인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인플레 유발 요인이 된다. 일각에선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넷째,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정부 인식이다. 환율이 급하게 오르는 게 경제에 부담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좋은 거 아니냐는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오히려 환율을 더 끌어올리고 외국인의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시장 불만이다.
정부와 시장 간 인식의 간극은 비단 환율뿐만이 아니다. 각종 경기지표를 두고 시장에선 우려하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정부는 괜찮다고 한다. 심상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되뇌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20여 년 전 외환위기 때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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